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4월6일] 근대 올림픽

1896년 4월6일 아테네시 팬아테나익 스타디움. 올림픽의 성화가 피어올랐다. 서기 393년 고대올림픽이 폐지된 지 1503년 만이다. 올림픽 부활의 주역은 두 사람. 고대 경기장 유적을 발굴해 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독일인 에른스트 쿠르티우스와 프랑스인 쿠베르탱 남작이다. ‘올림픽의 아버지’로 기억되는 쿠베르탱이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전쟁. 보불(프로이센-프랑스)전쟁 패배로 실의에 빠진 프랑스 청소년들을 강건한 병사로 키우는 도구로 스포츠를 골랐다.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 시작한 스포츠 보급운동이 평화의 제전으로 이어진 아이러니 속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은 뒤죽박죽이었다. 무엇보다 돈에 쪼들렸다. 기업인들의 갹출로 고대 경기장을 복원했지만 수영장을 마련하지 못해 수영경기는 바다에서 치렀다. 14개국에서 모인 245명의 선수단 중에는 부정선수도 적지않았다. 관람 도중 테니스 종목에 선수로 참가해 단ㆍ복식을 석권한 영국인 관광객도 있었다. 졸작으로 끝날 것 같았던 아테네 대회 분위기를 극적으로 반전시킨 것은 마라톤. 아테네의 목동 출신인 스피리돈 루이스가 쟁쟁한 선수들을 물리치고 우승하자 그리스는 감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주요 언론은 그의 우승을 기원전 490년 올림픽 평원을 단숨에 달려 승전보를 전한 옛 그리스 병사와 비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흥행 성공. 올림픽은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기업들도 팔을 걷었다. 코카콜라와 미쓰비시 등은 올림픽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굳어졌다. ‘상업주의가 판친다’는 비판 속에서도 각국은 치열한 유치경쟁을 펼치고 있다. 경제적 파급효과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준비 중인 중국은 450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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