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9월26일] <1200> 황화론


19세기 말 미국 신문의 만평 하나. ‘백인 여성의 시신 위에서 입에 칼을 문 중국인이 권총을 쏘아댄다. 천지는 중국인의 방화로 불탄다.’ 그림이 전달하려는 의도는 명확하다. ‘중국인을 쫓아내자!’ 붓의 편견은 폭력을 불렀다. 중국인 학살사건이 빈발하고 1882년에는 중국인배척법까지 만들었다. 대륙횡단철도(1869년 완공)를 깔 때 노동력의 절반 이상을 제공해 서부 개척의 숨은 공로자로 꼽히는 중국인들이 오히려 증오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불경기의 원인을 저임금의 중국인 노동이민 때문으로 돌리기도 했다. 황인종에 대한 편견은 ‘황화론(黃禍論)’으로 발전한다. 독일황제 빌헬름 2세는 러시아 차르 니콜라이 2세에게 1895년 9월26일자 편지에서 ‘유럽 문명을 파괴하려는 아시아인들에게 맞서 단결하자’고 촉구했다. 이때 처음 쓰인 ‘황화(yellow peril)라는 용어는 곧 서구사회 전체로 퍼지고 아류작이 쏟아졌다. 영국 시인 키플링이 발표한 ‘백인종은 미개한 야만인들을 교화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시 ‘백인의 책무(The White Man's Burdenㆍ1899년)’에서 1977년 나온 소설집 ‘황색 악마’까지 편견과 황화론은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과연 황화론이 현실화할까. 멜라민 분유의 공포가 확산되고 베이징올림픽에서의 국수주의를 보면 혹여 그럴 것도 같다. 문제는 ‘황화’가 중국인만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시안 전체가 대상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노동운동 지도자인 새뮤얼 곰퍼스는 ‘우월한 백인은 열등한 아시안들을 법이나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쫓아내야 한다’고 말했었다. 일본산 차량이든 중국산 장난감이든 대미수출이 늘면 어김없이 황화론이 등장하고 한국산 제품까지 덩달아 견제를 받는다. 황인종은 정녕 천형(天刑)을 안고 태어났는가.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