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8월 21일] 創業과 守成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주 발표한 ‘국내 1,000대 기업조사’는 창업(創業)도 어렵지만 수성(守成)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국세청에 법인사업자로 신고된 36만5,000여개 기업 가운데 매출액을 기준으로 1,000위까지 조사한 결과 올해 환갑을 넘긴 국내 기업은 불과 50개였다. 대표기업을 보면 우리은행ㆍ신한은행ㆍ기아자동차ㆍ삼성물산ㆍ대림산업 등이다. 그러나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흡수합병된 회사의 역사를 물려받은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 국내에서 일갑자를 넘긴 기업은 이보다 훨씬 적다. 기업의 역사가 짧은 것과 함께 부침도 심했다. 1,000대 기업으로 진입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15.8년이었다. 이 가운데 매년 102개 기업은 1,000대 기업에서 탈락했다. 5년 전 1,000대 기업에 들었던 기업 가운데 현재도 순위 안에 들어 있는 기업은 71%에 그쳤다. 상의는 “건국 60년 동안 우리 기업도 격동의 흥망성쇠를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해석했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창업 못지않게 수성이 중요하다. 올해 건국 60년을 맞은 우리나라는 창업에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지난 1948년 건국과 함께 거의 무일푼으로 시작한 한국 경제는 1960년대 산업화를 거쳐 1970년대 본격적인 중공업 육성정책을 발판으로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성장의 신화를 이룩했다. 단기간의 압축성장을 통해 이룩한 성적표는 눈부시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 67달러에서 지난해 2만45달러로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다. 수출은 1948년 2,200만달러에서 지난해 말 3,714억달러로 늘었다. 수입도 2억4,800만달러에서 3,568억달러로 급신장했다. 무역규모로 치면 대한민국은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해방되던 해 1만대를 넘었던 자동차등록대수는 1,600만대를 돌파했다. 특혜를 받아야 놓을 수 있었던 전화기는 이제 1인 1 휴대폰시대에 들어설 정도로 흔한 세상이 됐다. 조선ㆍ철강ㆍ자동차ㆍ반도체산업은 세계 최강 아니면 선진 일류기업들과 대등한 경쟁을 벌일 정도로 산업화에 성공했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그러나 수성에도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덩치는 엄청나게 커졌지만 안정기에 접어든 후 체력과 체질은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 아래 몸집을 부풀려온 대기업들이 아직도 한국 경제를 주도하고 있고 정부정책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과정에서 등한시했던 분배와 복지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고령화, 빈부격차 해소, 지역ㆍ세대ㆍ계층 간 갈등은 쉽게 아물 기미가 안 보인다. 속성성장과정에서 가려졌던 이 같은 부작용과 후유증을 극복하는 일이 과제다. 무엇보다 성장동력이 떨어지고 있는 게 문제다. 올 상반기 건설ㆍ설비ㆍ무형고정투자를 합친 총고정자본의 실질증가율은 0.5%로 사실상 0에 가까웠다. 미래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고 있는 것이다.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조선소를 유치했던 정열과 서독에 보낸 광부ㆍ간호사를 담보로 산업을 일으켰던 뚝심도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3년 뒤의 수익원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을 정도로 미래는 불투명하다. 국가 경제력도 자꾸 떨어진다. 국제통화기금(IMF) 조사에 의하면 2007년 한국의 경제력은 인도에 밀려 세계 랭킹이 12위에서 13위로 떨어졌다. 2006년에는 러시아에 밀려 11위에서 12위로 추락, 해마다 뒷걸음질치고 있다. 씨앗을 뿌리지 않고 밭을 일구지 않은 결과다. 기업도 그렇지만 나라의 흥망성쇠도 잠시잠깐이다. 1960년대만 해도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번째의 부자였다. 그러나 지금 필리핀은 대다수 국민들이 끼니걱정을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렵다. 불과 40여년 만에 나라의 운명이 뒤바뀐 것이다. 창업에 성공했다고 해서 수성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한강의 기적에 안주하지 말고 수성에 더욱 힘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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