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한국형 IB가 살길이다] <1부-3>천수답 영업 이젠 바꿔야

'손쉬운 사냥' 의존말고 '안정적 농사' 지어라<br>위탁매매가 수익의 64%… 시황만 쳐다봐<br>골드만삭스는 자기거래비중이 68%나 달해<br>수익다변화 통한 증권사별 차별화 대비해야



지난해 증권사들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며 국내 증권사 모두 흑자를 내는 진기록을 연출했다. 55년 증권업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일부 대형 증권사들은 순이익 규모가 3,000억원을 넘어서는 성적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증시가 다시 급락하자 증권사들의 경영에 비상등이 켜졌다. 당장 지난 4~5월 실적이 증권사별로 전년 동기 대비 10~60% 급감했다. 6월에는 일부 증권사를 제외하고는 적자로 돌아섰다. 한 증권사의 임원은 “증권사들이 지난해 증시 호황기에 지점 수를 경쟁적으로 늘렸으나 올 들어 상당수가 적자점포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의 절대적인 수입원인 위탁매매수수료(주식거래수수료)는 주식 거래량에 비례하는데 지난해 말부터 주식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거래량도 급감했기 때문이다. 임대료ㆍ인건비 등 고정비 지출은 지난해와 똑같이 나가는데 수입은 줄어들어 마진 악화가 불 보듯 뻔하다. ◇시황에 목매는 ‘천수답 경영’=증시가 활황일 때 벌었다가 불황일 때 ‘까먹는’ 전형적인 천수답식 수익구조는 한국 증권사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2007회계연도 1ㆍ4~3ㆍ4분기(2007년 4~12월) 증권사들의 영업수익 구조를 들여다보면 순영업수익 중 위탁매매(브로커리지) 수입이 63.96%에 이른다. 이밖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문은 자기매매(12.49%)와 펀드판매(11.27%)였다. IB업무가 수익에 기여한 비중은 5.23%에 불과했으며 자산관리도 0.61% 수준이었다. 브로커리지 의존도는 대형 증권사일수록 컸다. 한국증권연구원에 따르면 영업수익 기준 상위 8개 증권사는 지난 3분기 총수익의 약 70%가량이 브로커리지에서 나왔다. IB는 3.91%, 자산관리는 0.87% 수준에 불과했다. 김란영 연구원은 “수익구조가 지난 수십년에 걸쳐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브로커리지 비중이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의 이 같은 수익구조는 외국의 글로벌 IB들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골드만삭스의 2006년 기준 수익을 보면 자기거래의 비중이 68%를 차지했으며 IB업무 15%, 자산관리 11%로 구성돼 있다. 모건스탠리 역시 자기거래가 48%로 가장 큰 수익원이 되고 있으며 위탁매매수수료는 11%에 불과하다. 한국과 미국의 전체 증권사들의 수익구조를 비교해봐도 극명한 차이가 있다. 한국증권업협회에 따르면 2006회계연도 기준으로 미국은 위탁매매가 22%인 데 반해 한국은 56%에 달한다. 자기매매(미국 22%, 한국 15%), 인수주선(11%, 3%), 자산관리(13%, 0.6%) 등이 수익기여도 차이가 컸다. 펀드판매는 각각 10%와 12%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브로커리지 수익은 증권 시황이 좋을 때 급등하다가 나쁘면 급락하는 증시에 철저히 종속된 변수다. 금융연구원이 2001년 1ㆍ4분기부터 2007년 2ㆍ4분기까지 국내 증권사 당기순이익과 주가지수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수익과 주가 변동성 간의 연관성이 0.73(최고치 1 기준)으로 높게 나타났다. 즉 주가변동이 당기순이익을 결정하는 데 73%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미다. 물론 브로커리지 외에 자산관리ㆍIB 등도 증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수익원을 다변화하면 그만큼 수익의 변동폭이 줄어들게 된다. 임병철 금융연구원 박사는 “위탁매매 중심의 수익구조는 증권시장 상황에 밀접히 연관돼 있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증권사별 차별화 가속화될 것=증권사 간 매매수수료 경쟁이 치열해진데다 본격적으로 영업을 개시한 신설 증권사들이 본격 가세하면 위탁거래 부문의 수익성은 악화일로로 치달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석원 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사마다 비용과 수익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개별 증권사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 이미 수익과 비용이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온 것으로 분석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신설 증권사들도 브로커리지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시장은 더욱 빠르게 레드오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신설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은 “비용 때문에 애널리스트 수를 최소화한다는 게 당초 계획이었으나 기관 상대 브로커리지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업종별로 애널리스트를 갖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들도 ‘체질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브로커리지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신설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글로벌 IB를 표방한다고 다들 말하지만 장기적인 준비보다 증권업 라이선스를 확보하기 위해 부랴부랴 증권사를 설립했기 때문에 당장 쉽게 벌 수 있는 브로커리지 수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오희열 우리투자증권 전무는 “브로커리지가 ‘사냥’이라면 IB와 자산관리 등은 ‘농사’라고 할 수 있다. 사냥은 도구만 있으면 손쉽게 할 수 있지만 사냥감이 떨어지면 굶어야 한다. 그러나 농사는 초기 투자비용도 많이 들고 수확까지 기간도 오래 걸린다. 반면 한번 자리를 잡으면 매년 수확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그동안 증권사들이 힘든 농사(IBㆍ자산관리 업무 등)를 외면하고 손쉽게 사냥(브로커리지)에만 치중해왔다는 것이다. 그나마 일부 대형 증권사들은 수익원 다변화에 지난 몇 년간 힘써왔다. 우리투자증권의 경우 2005년 53.8%에 달하는 브로커리지 비중이 2006년, 2007년에는 각각 36.5%, 39.5%까지 내려갔으며 2008년 1ㆍ4분기(4~6월)에는 29%로 떨어졌다. 대신 IBㆍ트레이딩ㆍ이자수익 부문의 수익 기여도가 조금씩 상향됐다. 삼성증권의 경우 브로커리지 비중이 2006년 45.8%, 2007년(1ㆍ4~3ㆍ4분기) 53.3% 수준으로 평균보다 낮다. 특히 자산관리 분야 수익이 2006년 20.9%, 2007년 18.6%로 약 20%에 달해 향후 자산관리형 증권사로서의 성장 가능성이 엿보인다. 노희진 한국증권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와 내년 증시 약세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 증권사 신설 붐,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증권사별 수익 차별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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