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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문화산책] 우리 말이 앓고 있다

최준호(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

[토요 문화산책] 우리 말이 앓고 있다 최준호(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 최준호(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 서포터즈, 00타운, 무빙워크, 웰빙, 버스 번호보다 두 배나 더 크게 써놓은 B(blue), G(green), R(red)…. 상품명으로 사용되는 수많은 외국어ㆍ외래어를 차치하고도 지나치게 많은 외국 말들이 일상의 우리말과 뒤섞여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들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 우리말 속에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스미디어는 앞 다퉈 자극적인 말들을 앞세우며 우리말을 일그러뜨리고 있다. 일상에서는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이 기능이 주로 강조될 뿐 말은 일회용품처럼 가꿔지지 못하고 버려진다. 게다가 지식인들조차 새로운 단어에 상응하는 우리말을 찾고 만들기보다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외래어ㆍ외국어를 마구 사용한다. 사회 전반을 돌아봐도 유아기부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바람이 불고 대다수 국내 기업들은 입사 기준으로 일정 수준의 토익 점수를 일률적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한글 교육에 대한 어떤 새로운 기운도, 한글 구사 능력에 대한 어떤 질문도 찾아보기 어렵다. 말은 의사소통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한 민족의 삶ㆍ철학ㆍ문화가 들어 있다. 말을 배운다는 것은 언어를 구사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그 언어권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 생각하는 법, 사회의 규범과 가치, 나아가 그 민족의 오래된, 그리고 지금도 살아있는 의식과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혼합 잡종의 말들이 혼재된 지금의 우리말은 어떤 사고와 의식체계, 가치관을 담고 또 따르고 있는가. 우리는 문학을 사랑하던 민족이다. 무관조차 시를 쓸줄 알아야 했고 지금도 우리나라는 시집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곳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연극 무대에서는 한마디의 말도 버리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는 관객에게 오래 남길 말, 정확하고 아름다워서 긴 여운이 있는 말을 찾고, 말의 생명과 힘을 키우려고 애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우리말의 가치를 공유하고 살려주지 않으면 이런 소수의 노력조차 기운을 잃고 소멸돼버릴 것이다. 우리 사회와 문화의 정체성 회복은 가장 가까운 일상에서, 우리말의 건강을 되찾도록 노력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귀를 기울이면 한글의 아름다운 소리가 들린다. 한글의 풍요로운 표현과 의미의 폭ㆍ깊이를 통해 사유와 상상의 세계를 만나자. 우리말이야 말로 우리 문화의 심장이요, 발이 아닌가. 입력시간 : 2004-08-2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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