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바둑영웅전] 고수는 고수였다-제3보(28~43)
조훈현은 상대방의 의도를 분쇄하는 재미로 바둑을 두는 사람이다. 흑29와 31을 응수시키고서 아예 32, 34로 살자고 움직였으니….
검토실에서는 백이 가의 선수끝내기를 거쳐서 나로 다시 한번 흑진을 찌그러뜨릴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실전보의 32, 34로 움직여버린 것이다. 이거야 흑을 완전히 빈껍데기로 만들자는 탐욕적인 수가 아닌가. 검토실의 고수들은 껄껄 웃어젖혔다.
고심하던 딩웨이는 상변의 백 한 점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흑35 이하 43으로 고개를 내미는 데 만족하고 말았다. 그 사이에 백은 상변의 고립되었던 한 점을 시원스럽게 탈출시켰다. 백이 크게 성공한 모습이다.
이 대국을 마치고 중국에서 돌아온 조훈현에게 필자가 물었다.
“딩웨이가 왜 상변을 잡아버리지 않은 걸까요. 잡으러 들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던데….”
“안 잡은 게 잘한 거예요. 딩웨이가 고수는 고수더구먼.”
참고도의 흑1 이하 5면 백 4점이 잡히기는 잡힌다. 그러나 백6이면 또 한번 7로 굴복해야 하며 그때 백8로 시원하게 전개하면 흑이 망한 꼴이라는 설명이었다. 자아 이제 백은 좌상귀를 어떤 식으로든 지켜야 하는 장면인데….
/노승일ㆍ바둑평론가
입력시간 : 2004-05-26 1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