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확장제일」주의가 화 불렀다/한보 왜 좌초됐나

◎내실다지기 소홀 기업설립·인수만 눈독/“속빈 강정”… 정부·거래은행들 끝내 외면한보그룹의 부도사태는 한보그룹의 무리한 사업확장에서 초래된 필연적 결과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산업과 금융을 비롯한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의 실패를 입증하는 것이라는데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과거 정치권력과 결탁했던 자본이 새로운 정치환경 아래서도 끊임없는 확장을 추진하다 냉엄한 경제논리에 말려 좌초위기를 맞은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보아 왔다. 정부와 금융권은 한보철강을 부도처리후 법정관리를 결정했으나 한보그룹과 한보철강을 분리해 제3자 인수를 추진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연간 금융비용만 5천억원에 달하는 「빚더미 기업」을 선뜻 인수할 만한 업체가 없는데다 주인이 바뀐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보그룹은 불사조같은 기업으로 통한다. 한보는 지난 91년의 수서사건과 95년말의 대통령 비자금사건 등 대형 정치사건과 연루돼 존립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금방 살아나 외형성장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 한보는 수서사건 직후 밀려드는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법정관리라는 편법으로 간신히 지탱했던 회사. 당시만 해도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기업쯤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한보는 93년부터 3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무려 9개 기업을 인수하거나 신설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한보는 지난 93년 연간 매출 4백억원대의 상아제약과 삼화신용금고를 인수했으며 승보엔지니어링, 승보데이터시스템을 잇달아 설립한데 이어 95년에는 7개 기업군을 거느리고 있던 준재벌급 유원건설을 전격 인수, 파란을 일으켰다. 아울러 정보통신, 영상산업, 해운산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왔다. 지난해는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권 소유기업인 루시아석유사의 경영권을 인수, 정부 및 기존 추진업체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지난 70년대 후반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건설로 태어난 한보그룹의 계열사는 지난해말 현재 24개에 이르고 있다. 한보그룹의 경영색깔은 이처럼 「확장제일주의」에 맞춰져 있다. 내실 다지기보다는 기업인수나 신규설립 등을 통한 「곁눈질」에 주력한 결과, 주력업종인 한보철강의 부실화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정태수 총회장은 지난 95년 유원건설 인수를 계기로 한보의 자금줄에 대한 의혹이 꼬리를 물자 『아산만 철강단지의 기계설비 자금의 80%는 외화대출 형태로 정부로부터 융자를 받고 건설자금은 은행으로부터 60% 이상 대출받고 있다』며 『전체 투자자금중 자체조달 금액은 7천억∼8천억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한보그룹은 94년 한해 동안에만 1조1천억원 이상의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빌려 썼다. 한보는 그러나 기업인수에는 정태수총회장의 개인자금을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그동안 사들이거나 설립한 기업의 규모가 크지 않아 1백억원 안팎의 자금 밖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상아제약과 삼화신용금고의 경우 총회장의 개인자금으로 인수했다』고 말했다. 결국 한보그룹은 「국내 민간기업 최대의 역사」라는 당진제철소에는 남(은행)의 돈을 끌어다 쓰고 자체 투자여력은 사세 부풀리기에 쏟아 부은 셈이다. 철강업계는 『한보가 최악의 상황에 이른 것은 성공여부를 알 수 없는 철강사업에 앞뒤 안재고 뛰어들어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보철강 문제는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지적이다. 사업성이 불투명한 거대사업의 문을 열어준 정부당국이나 부실기업에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다가 은행권마저 멍들게 한 금융당국, 거액여신 제공에 대한 개입설이 끊이지 않는 정치권 등 한보철강 주위가 「부실 한국경제의 총집결판」이란 지적이다. 한보철강의 앞으로의 진로는 우리경제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채권은행권단이 「한보철강 경영에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을 내릴 경우 경영정상화 작업을 거쳐 제3자 매각을 추진할 것으로 보이나 현대나 포철 등도 난색을 표시하고 있어 진통은 계속 될 전망이다.<한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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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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