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17일] 팔로메어 수폭 사건


1966년 1월17일 오전10시20분, 지중해 상공. 미 공군 B-52 폭격기가 공중급유를 받는 과정에서 추돌사고가 일어났다. 먼저 KC-135 급유기가 폭발했다. 기름과 파편을 뒤집어 쓴 폭격기도 폭발하기 직전, 승무원들은 낙하산으로 탈출하며 폭탄창을 열였다. 불타는 폭격기에서 떨어진 폭탄은 모두 네 발. 한 발의 위력이 히로시마 원폭의 100배에 이르는 수소폭탄이었다. 어쩌자고 수폭을 투하했을까. 비행기와 함께 폭발하는 것보다 바다에 떨어지는 게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대와 달리 수폭 세 발은 스페인 동부 해안가 팔로메어 마을에 떨어졌다. 한 발은 낙하산이 펼쳐진 덕을 봤는지 보관용기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자유낙하속도로 떨어진 두 발의 수폭은 터졌지만 핵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탄두를 감싼 수십 개의 소형 화약이 정해진 순서대로 폭발하지 않으면 기폭장치가 작동하지 않도록 설계된 덕분이다. 남은 한 발은 바라던 대로 지중해에 빠졌으나 80일간 수색작업을 벌인 끝에 869m 깊이의 바닷속에서 간신히 찾아냈다. 흑인 심해 잠수병의 얘기를 그린 2000년 개봉작 ‘맨 오브 오너(Men of Honor)’의 소재도 여기서 나왔다. 미국은 왜 평시에 핵폭격기를 운항했을까. 냉전 탓이다. 기름 값으로만 해마다 1억2,300만달러(요즘 가치 8억달러)를 지출하며 핵폭격기를 24시간 내내 공중에 띄웠다. 대형 참사를 비켜간 팔로메어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쉬쉬하고 넘어간 핵병기 관련 사고는 30건이 넘는다. 42년 전의 아찔했던 순간은 망각되고 있지만 흔적은 깊게 패었다. 핵폭발은 없었어도 광범위하게 누출된 방사능이 아직까지 검출된다. 사라져버린 냉전의 추억을 되씹는 사람들의 힘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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