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사회대타협, 더 미룰순 없다] 경영권 보장-일자리 창출 '윈윈'하자

<3부-2> 한국형 모델을 찾아라-국민과 기업의 소통을<br>황금주·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장치 서두르고<br>기업들은 비정규직 축소등 사회적 책임 다해야<br>지배구조 논란도 이제 '흑묘백묘'식 해법 찾을때



경남 울산에서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이모(37) 사장은 올해 초 국세청으로부터 한 통의 세금고지서를 받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돌아가신 부친의 회사를 넘겨받은 이 사장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무려 100억원. 회사의 비상장 주식 100억원어치와 개인명의의 부동산 등 총 200억여원의 상속재산을 대상으로 매긴 것이었다. 금융자산이 거의 없는 그로서는 경영권을 지키면서 설비투자도 하자니 주식 물납이든 부동산 처분이든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이 사장은 “주위에서도 기업을 애써 키워온 사장들이 회사를 물려주려고 해도 50%가 넘는 상속세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그나마 새 정부가 가업을 승계하는 중소기업에 대해 상속세 부담을 줄여준다고 하니 기대를 걸고 있는 눈치”라고 전했다. 요즘 국내 중소기업 창업주들은 이처럼 막대한 상속ㆍ증여세 부담을 견디지 못해 아예 사업을 접을 태세다. 평생 가꿔온 가업을 이어가고 싶지만 2세가 상속세를 낼 능력이 부족해 편법ㆍ탈법을 써야 할 판이다. 설상가상으로 상속세율 65%의 시행시기마저 오는 2010년으로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는데 그 정도 세금이야 내야 하지 않느냐”는 집단의식에 떠밀려 속앓이를 하고 있을 뿐 드러내놓고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을 둘러봐도 이렇게 높은 상속세율은 찾아보기 힘들다. 독일은 직계상속의 경우 7~30%의 상속세율을 적용한다. 중소기업 가업상속을 하게 되면 영국은 100%, 프랑스는 75%를 공제해준다. 이미 상속세 인하가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김영용 전남대 교수(경제학)는 “자손에게 부를 물려주려는 행위는 기본적인 인간성에 속한다”며 “합법적인 상속을 어렵게 할수록 상속을 둘러싼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높은 상속세율 근저에는 무슨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기업주=가진 자’에 대한 반감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일자리 제조기’이자 ‘경제성장의 엔진’인 기업을 단지 ‘기업주 개인의 돈’으로만 바라보는 일차원적인 사고 때문이라는 것. 이 와중에 ‘기업이 활력을 잃으면 일자리 창출도, 경제성장도 힘들다’는 명확한 시장원리는 묵살되고 있다. 서구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상생의 사회적 대타협이 성공하려면 우선 파이를 키우고 형평에 맞게 분배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반기업제도(정서)→기업 위축→투자ㆍ일자리 감소, 비정규직 양산→양극화 심화→반기업 환경 확대의 악순환 고리부터 잘라야 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1인당 3만달러 정도의 소득을 달성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일반 국민들 모두 목표를 공유하면서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의미심장한 보고서 하나를 냈다. 30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우리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배당 및 자사주 매입에 쏟아부은 자금만도 무려 69조원에 이른다. 대신 주식시장에서 조달한 금액은 절반도 안되는 30조원이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자금은 생산적 투자와 거리가 멀다. 만약 이 돈이 생산적인 설비 또는 연구개발(R&D) 투자에 들어갔다면 일자리는 크게 늘어났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기업들은 이렇듯 주가관리에 갖은 정성을 쏟는 걸까. 그 이면에는 한국 대기업들의 적대적 인수합병(M&A) 공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전경련에 따르면 상장기업 3개 가운데 1개사(31.2%)는 적대적 M&A 위협에 노출돼 있지만 4개 중 1개(25.7%)는 경영권을 방어할 수단이 없다고 호소한다. 이런 상황에서 상장기업들은 돈을 버는 족족 자사주를 사서 소각해버려야 경영권 방어에 유리해진다. 또 배당을 많이 해야 경영권을 빼앗아버리겠다는 해외 금융자본의 으름장을 피해갈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대기업들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별로 없다. 차등의결권ㆍ황금주ㆍ포이즌필 등은 그저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당국도 이제껏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워 방어장치 마련을 애써 외면해왔다. 대기업들의 생산자원을 금융 투기자본의 사냥감으로 방치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꼴이다. 정부와 국민이 대기업에 단 한가지만의 지배구조를 강요하고 있는 점도 대타협의 걸림돌이다. 전세계 기업의 지배구조는 다양하고 각자 역사와 환경에 맞는 모델을 발전시켜왔다. 우리처럼 ‘주식시장 지배의 미국형’만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고집하는 나라는 없다. 스웨덴은 이미 70년 전부터 정부와 국민ㆍ근로자가 합심해 차등의결권을 만들어 발렌베리 등 대기업을 육성하고 파이를 나눠 갖는 지혜를 발휘했다. 이와 관련, 하버드 경영대는 지난해 말 “기업지배구조에는 미국형과 가족ㆍ그룹 지배의 일본형, 은행 지배의 독일형 등 세가지가 있는데 이중 어느 게 좋은지 정답이 없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수전 버거 미국 MIT 교수는 ‘우리는 어떻게 경쟁하는가’라는 경쟁력 보고서에서 “기업경영이나 지배구조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고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바로 정답”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도 이제 심각한 대립과 분열을 가져온 지배구조 논란을 원점에서 되돌아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흑묘백묘’식 해법을 찾아내야 할 때다. 아울러 기업들은 경영권과 승계를 보장받는 대신 생산적 투자와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 비정규직 축소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적극 나서는 ‘윈윈’의 사회적 대화에 임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일부 대기업과 귀족노조의 배만 불리는 게 아니라 성장과 분배가 함께 갈 수 있는 한국형 발전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완전무장 vs 맨손
美 S&P500대기업 99%가 방어수단 보유
한국기업은 적대적 M&A 위협에 속수무책
'한쪽은 완전무장, 다른 한쪽은 맨손.' 글로벌 인수합병(M&A)업계에서는 경영권 방어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한국시장에 대해 이렇게 비아냥거린다. 실제로 국내 상장기업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 의무공개매수제도, 외국인 주식취득제한 등 대부분의 규제가 폐지되는 바람에 적대적 M&A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그나마 새 정부 들어 경영권 방어에 대한 전향적인 변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안정적인 경영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차등의결권제도 등의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입법 움직임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전세계적으로 철강이나 석탄ㆍ곡물 등 원자재난이 심화되면서 각국 정부가 앞장서 규제조치를 강화하는 '자국 보호주의' 열풍이 일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어떤 형태로든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들은 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최대주주의 지분을 늘리라"고 외칠 뿐 국내 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 기업들의 상황은 딴판이다. 미국 S&P 500대 기업을 보면 99.4%가 포이즌 필, 차등의결권 등 최소 1개 이상의 경영권 방어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평균 방어수단 수는 3.7개. 포이즌 필은 인수인을 제외한 기존 주주에게 저가의 신주 할인매입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미국은 이 제도 도입 이후 적대적 M&A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영국 등 유럽기업들도 강력한 매수규제를 유지하면서도 개별 기업에 황금주,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을 허용하고 있다. 박규원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미국과 영국의 경영권 공방제도의 특징은 한마디로 공격자와 방어자 간의 힘의 균형"이라며 "미국은 공격자와 방어자가 필요한 모든 수단을 활용할 수 있고 영국은 공격도 어렵지만 방어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근 유럽 최대규모의 사모펀드인 퍼미라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국내 시장에 진출을 검토하는 등 헤지펀드의 국내 시장 상륙이 임박, 기업들의 위기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투기자본에 맞서 국내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유통주식수를 줄이거나 배당률을 높여 투기자본의 이익을 높여주는 방법 외에는 없다. 손영기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팀장은 "해외 투기자본 유입으로 국내 기업들은 여유재원을 생산적인 투자에 활용하기보다 배당을 통해 외국자본의 높은 투자수익을 보장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외국자본의 M&A를 막기 위해 자사주 매입을 하게 돼 투자가 위축된다"고 우려했다.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과도한 경영권 보호장치가 대주주의 전횡을 방치하고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방해하는 등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경영권 고민에서 벗어나 운신의 폭이 넓어지게 만들어야만 투자 확대와 국부 창출로 이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외국의 사례와 국내 실정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한국에 맞는 경영권 보호장치를 도입해야 할 시점"이라며 "상법 개정 등을 통해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 필 같은 방패를 국내기업에 안겨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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