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남이 눈띄워주는 문화의식/한명희 국립국악원장(로터리)

『판소리·대금·장구·가야금·아쟁·피리·해금이 절묘한 선율의 리듬을 펼치는 동안 무대에서는 흰 말과 검은 말, 그리고 흰 옷과 검은 옷을 입은 배우들이 국악연주에 맞춰 신기에 가까운 동작과 춤을 보여줘 관중들을 황홀감과 경이로움으로 이끌면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동서양의 판이한 예술이 하나로 조화돼 관중을 완전히 압도하는 새로운 예술창조의 경지를 보면서 우리 국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흥분을 가눌 수 없었다. 징가로 극단의 바르타바스 감독은「에클립스」의 협연대상을 찾기 위해 작년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한국에서 국악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이시영 프랑스 주재 대사가 세계적으로 명성있는 아비뇽연극제에서 국악과 함께 꾸민 공연작품을 보고 놀란 감동을 술회한 기고문의 일절이다. 이번에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ITI 세계연극제에 참여한 많은 예술인들도 우리 전통예술을 접하고는 한결같이 속으로부터 감탄을 보내고 있다. 연극계의 세계적인 인물인 덴마크의 바르바는 우리네 제례음악을 듣고 난 후의 감동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역설하는가 하면, 아비뇽 세계연극제의 총감독인 다르시에는 한국의 승무공연을 보고는 세기적인 전위무용가 머스 커닝엄의 춤과 같은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며 감격해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내년 아비뇽연극제에 한국의 판소리·승무·정악·사물놀이팀 등을 초청하여 서구인들이 깜짝 놀랄 만한 작품을 엮어내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도 물론이다. 참 이상한 일들이다. 우리는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인 국악을 놓고, 저들은 왜 저렇게 호들갑인가. 그러고 보니 부끄러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에서 버림받던 판소리가 수십 번의 커튼콜까지 받아가며 미국이나 유럽에서 열광받은 것은 이미 육칠십년대의 일이요, 사물놀이의 진가를 간파하고 재빨리 음반을 내며 초청공연을 일삼던 이들도 바로 우리가 아닌 저들이었으니 말이다. 어디 전통음악뿐이랴, 엿장수에게나 내주던 백자의 아름다움을 세계적으로 공인시켜준 것도 우리 아닌 일본인 학자였으며 한국문화의 정체성이나 우수성을 환기시킨 것도 대개의 경우 이방인들의 몫이 아니었던가. 자랑스런 문화를 일궈낸 선조들이 행여 측은한 눈빛으로 오늘의 우둔한 우리들을 굽어보고 있지나 않을지 저으기 송구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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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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