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25일] <1277> 클로드샤프


나폴레옹의 승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 역사적 사실과 소설 속의 허구라는 차이점에도 두 가지 사건은 ‘샤프통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샤프통신이란 높은 탑에 굴절되는 큰 막대를 이용해 알파벳 신호를 보내는 시스템. 간단한 정보의 경우 12~25㎞마다 설치된 신호국을 거쳐 15분이면 250㎞ 밖의 거리에 보낼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서 귀족들이 처형되거나 외국으로 탈출해 지휘관이 부족했던 프랑스 시민군이 잘 훈련된 외국 군대의 침공에 국토를 지켜내고 나폴레옹이 초반전에 연전연승하는 데도 샤프통신의 힘이 컸다. 문호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에드몽 단테스가 은행가로 성공해 남작 작위까지 받은 원수 당그라르를 파산시킬 때도 샤프통신을 동원했다. 단테스가 매수한 신호국 직원의 허위 투자정보를 믿은 당그라르는 대박을 노려 전재산을 투자했으나 결국 쪽박을 찼다. 샤프통신 개발자는 클로드 샤프(Claude Chappe). 1763년 12월25일 하급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성직자 교육을 받았으나 종교보다 과학에 흥미를 느껴 발명가로 방향을 튼 사람이다. 샤프는 입법회의 의원이던 형과 함께 통신 시스템을 발명하고 1792년 파리와 릴간 193㎞ 구간이 15개 신호국으로 연결되는 통신망을 깔았다. 통신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196개 신호코드까지 만들었던 샤프가 우울증에 빠져 자살한 1805년 무렵 샤프 통신망은 프랑스 전역에 깔렸다. 나폴레옹이 승리를 이어가지 못한 원인도 다른 나라들 역시 샤프통신을 적극 도입했기 때문이다. 샤프통신은 1837년 선보인 모스전신기에 밀려 역사의 뒷길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통신’의 위력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전신’이라는 단어도 샤프가 처음 만들어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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