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5월 22일] 태안 피해와 삼성 차명자금

며칠 전 태안반도에 갔다 왔다. 자원봉사의 발길이 많이 줄었다지만 휴일이어선지 그렇지도 않았다. 소원면 모항2리 신노루 지역에 모인 사람만도 700명은 족히 넘었다. 상처는 많이 아문 듯 보였다. 해안으로 가는 길 곳곳에 자원봉사자들과 태안주민이 서로 격려와 감사의 뜻을 주고받듯 내건 ‘태안주민 여러분 힘내세요’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현수막만 없으면 여느 시골이나 다름 없는 풍경이다. 백사장과 바다 물도 본래 색깔을 제법 되찾았다. 방제작업 지역도 처음 38곳에서 지금은 10곳으로 줄었다. 그래선지 작업 요령을 설명하는 안내자의 말에도 여유가 있었다. ‘요즘 기름값이 엄청 올랐습니다. 겉으로는 안보이지만 잘 파면 유전이 나옵니다. 채굴권을 드릴 테니 열심히 찾아보세요’. 농담 섞인 작업독려에 봉사자들은 웃음과 박수로 ‘힘껏 하겠다’는 다짐을 보냈다. 그러나 겉모습은 이렇게 평온해보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랐다. 모래와 바위 밑을 파보면 기름 때가 여전했다. 횟집도 거의 모두 문을 닫아 수족관에는 먼지만 수북했다. 상처는 치유된 게 아니라 덮여 있을 뿐이었다. 지금 주민들의 관심과 걱정은 올 피서철 장사다. 태안지역에는 15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태안군청은 방제작업 상황과 관광객 추이 등을 살펴본 후 주민들이 원하는 곳만 개별 개장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예년에는 날짜를 정해 일제히 개장식을 갖고 문을 열었는데 올해는 그럴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안군청과 주민들은 대체로 여름철 장사 전망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개장할 수 없는 곳이 많고 만리포 등은 개장이 가능하지만 예전처럼 피서객이 몰려오겠느냐는 것이다. 여름 장사를 망치면 주민들의 어려움은 불을 보듯 뻔하고 지역 분위기도 다시 격동할 가능성이 크다. 군의 한 관계자는 “주민들 사이에 다시 상경시위 이야기가 나오는 등 심상치 않은 기류가 있다”고 전했다. 피해 주민들은 선주보험과 국제유류보상기금에 정해진대로 보상을 받게 된다. 최대한도는 3,000억원이며 현재 설명회 등 보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원인제공자인 삼성중공업은 이와 별도로 도의적 책임 차원에서 1,000억원을 내놓기로 했다. 지난해 순이익의 4분의1에 해당하는 규모다. 주민들의 반응이 싸늘하지만 삼성중공업이 선뜻 더 내놓을 형편도 아니다. 더 이상의 부담은 경쟁력에 문제가 생기고 외국인 등 주주들의 반발을 부를 수도 있다. 고의라면 모를까 과실로(고의성은 재판에서 가려지겠지만) 기업경영이 위협받는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그렇다고 생업의 터가 황폐화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오염 피해와 보상에 규정만 따질 일도 아니다. 해법은 있다. 삼성 특검수사에서 밝혀진 이건희 회장의 차명자금 일부 활용이 한 방안일 수 있다. 이 회장이 그 돈을 사회에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실명전환할 삼성생명 주식과 탈루 세금ㆍ추징액을 빼면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금액은 대략 1조5,000억원에 달한다. 그 자금은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다. 이 회장이 중요시해온 인재양성, 시장경제 원칙과 제대로 된 자본주의를 확고히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교육, 반기업정서 해소와 기업가 정신 고취를 위한 캠페인, 소외계층 삶의 질 향상 등등. 그 일부를 태안 지역 환경 복구와 지역발전에 쓰는 것도 이런 일 못지않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태안주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고 삼성중공업의 부담을 덜어주며 10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이자 이 회장과 삼성의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태안사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나마 마무리라도 잘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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