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3월 27일] 외로운 한국은행 총재

2년 전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에 대한 기대는 솔직히 대단하지 않았다. 전임자의 강한 카리스마와 비교된 탓도 있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연(이 총재가 부산상고 2년 선배)만을 놓고도 시장의 시선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최악의 유약한 총재가 될 것이라고 비꼬는 소리마저 들렸다. 하지만 40년 골수 한은맨은 달랐다. ‘독일 병정’이라는 평가가 보여주듯 이 총재는 철저한 매파였고 누구보다 한은의 독립을 소중하게 여겼다. 새 정부 출범 후 ‘노무현 코드’기관장들에 불어 닥친 권력의 망령 속에서도 이 총재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은 데는 시장이 그에게 보내는 최소한의 신뢰가 바탕을 이뤘다. 그런 이 총재가 지금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심하게 표현하면 안팎이 적일 정도로 그가 처한 상황이 좋지 않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야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외생변수이고 중앙은행 수장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그러나 과천과 청와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강골인 이 총재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로 매섭다. 경제 수장을 자임하는 기획재정부의 ‘최-강라인(강만수 장관ㆍ최중경 차관)’이 외환ㆍ금융정책을 갖고 흔들더니 며칠 전에는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섰다. “성장보다 물가가 우선”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삼는 한은에 반가운 얘기처럼 들리지만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수장에게는 그런 말 또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지난 25일 시장을 흔든 이 총재의 ‘환율 천장’발언은 일부 비판이 있겠지만 치밀한 그의 성향으로 볼 때 시장과 중앙은행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방어적 수사(修辭)라 믿는다. 대통령의 성장 공약을 맞추기 위해 환율이 적당하게 올라주기를 바라는 고위 관료나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달래려 물가를 얘기하는 대통령, 그리고 이 틈을 비집고 금리인하론을 대문짝만하게 싣는 유력 언론. 한은을 흔드는 세력(?) 속에 중앙은행의 독립은 진정 위기로 빠져들고 있는지 모른다. 성장률이 통치권자의 욕심을 채우지 못할게 뻔한 하반기로 갈수록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 총재로선 취임 2년 만에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라선 셈이다. 총재 취임 직후 대통령 앞에서 대놓고 중앙은행의 독립을 강조하다가 “내가 한은 총재를 잘못 뽑았어”라는 농담조 탄식까지 들을 만큼 꼿꼿함을 과시했던 이 총재. 그가 남은 절반의 임기를 마칠 때까지 초심을 잃지 않기를, 그래서 임기 후 “중앙은행을 지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