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자연에 기대 산다는 것

박정래 <시인·제일기획 미디어전략연구소장>

자연 속에 삶의 거처를 꾸린 지도 벌써 7년이 됐다. 거처라고 하지만 호구지책 때문에 하루의 반 이상은 도시에 가 있으니 반도시인 반자연인인 셈이다. 한 7년쯤 지나니 반푼수에 가깝긴 하지만 자연 속에서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고 주변의 나무ㆍ숲ㆍ새ㆍ벌레ㆍ꽃 등이 제 모습으로 돌아오며 눈에 익숙해지나 보다. 내가 직접 심은 감나무ㆍ자두나무ㆍ앵두나무ㆍ대추나무ㆍ포도나무ㆍ모과나무가 저마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하늘을 향해 가슴을 벌리기 시작했고 자귀나무ㆍ층층나무ㆍ백리향ㆍ산벚꽃나무ㆍ회화나무ㆍ목련ㆍ소나무ㆍ주목ㆍ산뽕나무 등은 독특하고 짙은 향을 풍기며 하늘을 가리기 시작했다. 생명의 순수와 멀어진 도시인 울타리 대신 꽂아놓은 두릅나무와 엄나무ㆍ가시오가피나무는 사나운 가시를 뿜어내기 시작했으나 4ㆍ5월 내내 밥상에서 입안 가득 녹아나는 새순을 제공해줬다. 나무가 흙냄새를 맡기 시작하니 제 스스로 몸을 추스리며 길고 긴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아마 나보다 훨씬 오래 살며 생긴 지 7년에 지나지 않는 우리 마을의 사연과 역사를 나이테로 그려가며 덮어갈 것이다. 지난해부터 박달새가 초봄의 고정손님이 되었다. 이 녀석이 하필 우체통에 집을 지어 알을 낳고 부화해 새끼를 기른 뒤 5월 중순이면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다. 또한 봄부터 가을까지 종류를 알 수 없지만 계절별로 시간대별로 깊은 숲 속에서 듣던 여러 가지 새소리가 교향악처럼 울려퍼지고는 한다. 7년이 되니 새들도 우리의 거처를 자연의 일부로 인정해주기 시작하나 보다. 5월부터는 일주일에 한번씩 낫을 갈아 잡초를 손질해야 하고 정원의 잔디를 다듬어야 하며 너무 많은 들풀종은 적절하게 솎아주고 관리를 해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뜰과 정원은 호랑이가 새끼 칠 정도로 풀로 덮인다. 아예 특정한 종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장악하며 번식력과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한편 이 시점부터 자연이 주는 또 한 가지 특혜가 있는데 손만 뻗으면 끼니를 해결해줄 나물을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돌나물의 연한 맛, 쌔똥(일명 왕씀바귀)과 씀바귀의 강하고 쓴 맛, 민들레의 짙은 향, 쑥ㆍ쑥갓ㆍ질경이ㆍ참나물ㆍ취나물ㆍ우엉ㆍ산미나리ㆍ비름나물…. 새순들을 모두 모아 보리밥에 고추장과 들기름으로 썩썩 비벼 만든 들채비빔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면 포만감에 꽉 찬 내 배가 울창한 들이 된 기분이다. 자연의 혜택과 수혜를 받으며, 한편으로 자연친화적인 1차원적 노동력을 제공하고 땀을 흘리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혹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도시인들(또는 도회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의 혜택은 누리고자 하면서 자연에 거주하면서 다해야 할 책임과 소임은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연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고 투기 대상이나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생각하지는 않는지. 그러기에 우리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의 첫 질문은 누구나 예외 없이 들어올 때보다 땅값이 얼마나 올랐느냐는 질문과 아이들의 교육은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또 건강에는 좋겠는데, 출퇴근하는 데 어려움이 없겠느냐는 질문 등과 같이 대부분 도시의 삶에서 견줘보는 궁금증들이다. 어느 고승의 법어처럼 왜 달을 보라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는지 모르겠다. 마음 비우고 아름다움 느끼길 요즘 양평에는 옷이 세벌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아침저녁으로는 가을옷, 한밤중에는 겨울옷, 낮에는 여름옷이다. 그러고 보니 도회지에서 벗어난 전원에서는 일기변화가 더 심한 셈이다. 지구촌의 심상치 않은 환경변화가 자연에서는 더 예민하게 작용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자연은 작위적으로 대응책을 만들고 방어하지 않고 말 없이 변화에 순응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인위적인 훼손을 포함한 환경의 변화는 자연에 머물고 있는 많은 생명체들에는 그저 적응하거나 사라져야 할(To be or not to be) 심각한 모험이고 시련일 뿐이다. 자연에 기대어 산다는 것은 내 모든 것을 비우고 바람처럼 가벼워졌을 때 진정한 행복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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