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백년대계 교육에서 찾는다 2부. 선진교육 현장을 가다 <1> 인재 블랙홀 스위스<br>"대학은 아이디어-비즈 만나는곳" 학생들 기업연구실서 학부 수업<br>톱니바퀴 같은 산학연 협력으로 세계 최고기술 개발·제품화 결실<br>
| 스위스는 정부의 탄탄한 지원을 받고있는 대학들이 수많은 다국적기업 본부와 국제기구들과 연계해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국가로 자리잡았다. 스위스 로잔공과대학(EPFL) 전경(위부터), 이브레테리어 조교수가 안내하는 로잔공대 태양광 재료연구실, 올 2월 스위스 명품시계 롤렉스의 지원으로 완공된 롤렉스러닝센터./EPFL 알라인 헤르초크, 이상훈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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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 공항에서 기차로 40분을 달리면 나오는 인구 12만의 소도시 로잔. 중앙역에 도착하니 '올림픽의 수도'라는 간판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와 30여개 종목의 국제연맹 본부가 있는 세계 스포츠의 중심지다.
그러나 알고 보면 로잔은 세계적 식품회사 네슬레와 다국적 담배회사 필립모리스 본사를 비롯해 P&G, 노키아, 로지텍, 야후, 테트라팩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들의 유럽 연구기지가 위치한 명실상부한 스위스 경제의 핵이다.
스위스 경제의 중심에는 이들 기업들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이 있다. 스위스 국민들은 자국의 국가경쟁력 1위의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입을 모아 '공학 교육'이라고 대답한다. 로잔공과대학(EPFL)과 취리히공과대학(ETHZ)을 일컫는 스위스 연방공대는 수년 째 세계 대학랭킹에서 미국, 영국을 제외하고는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며 노벨상 수상자만 무려 20명을 배출했다.
랄프 아이흘러 취리히공대 총장은 "기본적인 이론코스를 마친 뒤 곧바로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학문을 익히고 가르친다"며 "이것이 과학이 교육과 연구, 모험에 도전하는 스위스만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최고의 경쟁력은 톱니바퀴 같은 산학연 시스템=차기 노벨화학상 1순위로 꼽히는 태양전지 원천기술의 창시자 마이클 그라첼 교수의 연구실(lab). 입구에 들어서자 한국기업을 포함한 전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손을 잡고 개발한 염료감응 태양전지들이 전시돼 있다. 식물의 광합성 원리를 적용한 신개념 태양전지를 개발한 그라첼 교수는 한 달에 절반은 산학연 협력을 위해 해외 출장을 다닌다.
바로 맞은편 혼합폴리머 연구실에서는 염료감응 태양전지와 경쟁할 실리콘 태양전지 개발이 한창이다. 이 연구실은 네슬레와 10년에 걸친 유제품 살균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최근 끝냈다. 이브 레테리어 조교수는 "실리콘과 플라스틱을 활용, 10시간이 걸렸던 살균을 이제는 몇 초면 할 수 있다"며 "스웨덴 용기회사 테트라팩과 50대50으로 출자해 폴리머 플라스틱을 이용한 태양전지를 곧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공계 스위스의 원동력은 톱니바퀴 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는 구조화된 산학연계 시스템. 첨단 기술에 목말라하는 기업들과 대학이 손을 잡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개발, 상용화된 제품까지 선보인다.
일상적인 학부ㆍ석사 수업은 산학연 그 자체다. 생명공학과에서는 현장에 적용할 실습 연구를 위해 학생들이 기차를 타고 40분씩 달려가 생명공학회사 연구실에서 직접 수업을 듣는다. 회사 연구진들과 매주 쓴 레포트를 지도교수에게 제출하는 건 기본이다. 최근 생긴 금융공학 전공에서는 UBS, 크레디트스위스(CS) 등 스위스은행들과 연계한 인턴십 프로그램을 정규 커리큘럼에 포함시켰다.
◇대학실험실이 벤처 창업의 본산=로잔공대 이노베이션 센터에 지난해 입주한 벤처회사 EELCEE. 스웨덴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이 회사는 연구실을 스위스 로잔공대에 두고 플라스틱 신재료로 만든 제품들은 현대차를 비롯한 전세계 유수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이 회사의 귀인 만손 사업개발팀장은 "로잔공대 재료공학과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활용해 스웨덴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며 "이런 벤처회사가 작년에만 교내에서 20개가 창업했다"고 말했다.
로잔공대의 슬로건 중 하나는'아이디어가 사업과 만나는 곳'(Where ideas meet business)이다. 캠퍼스 안에 있는 이노베이션 센터는 산학연을 통한 창업에 강한 이 대학의 상징이다. 지난해에 로잔공대와 기업 간에 맺은 산학연 파트너십만 390개. 이 중 절반 이상이 이 곳 이노베이션 센터에서 탄생했다. 노키아 연구센터와 세계 1위 마우스 제조업체인 로지텍, 제약사 머크사, 알칸 등이 이 곳에서 비즈니스의 밑천이 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취리히 공대는 안정적 연구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리스크 캐피탈' 제도를 운영 중이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갖고 시작한 연구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실패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실패의 경험을 쌓아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로잔공대에서 생명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협력부에서 근무 중인 임종은씨는 "대부분의 유럽 대학이 학문의 순수성에 방점을 둔 것과 달리 스위스연방공대는 차고(garage)에서 사이언스파크로 옮겨가는 미국식 창업에 초점을 둔다"며 "다국적기업들과 국제기구, 벤처기업들이 이 곳에서 영감을 얻어간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