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서신 등 희귀자료 700여점 공개<br>이방자 여사 결혼전 친필일기 등<br>대한제국 황실 귀중한 역사 자료<br>순종 서북순행등 사진 500여점도
| 고종의 아들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왼쪽에서 6번째)이 지인들과 함께 덕수궁 석조전에서 촬영한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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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친필 일기 등 대한제국 말기 왕가의 삶을 보여주는 유물 700여점이 1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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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1월1일>
"미혼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신년이다. 왠지모르게 즐거운 마음도 들고 또 아쉬운 마음도 든다."
<1919년1월21일>
"오후 1시, …비보(悲報), 생각하지 못한 비보가 내 귀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경성에 계시는 이태왕(李太王ㆍ고종) 전하께서 뇌일혈로 오전 1시35분에 발병해 오전 7시50분에 중태에 빠지셨다는 보고였다. 아아, 지금까지의 기쁨은 이내 슬픔으로 변했다."
비록 한ㆍ일간 정략결혼이었지만, 영친왕 이은(1897~1970)과의 혼례를 앞둔 신부 영친왕비 리 마사코(한국명 이방자ㆍ1901~1989)의 감정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영친왕의 부친 고종의 승하 소식으로 충격과 걱정에 잠겼고, 사흘 앞으로 다가왔던 결혼식은 14개월 뒤로 연기됐다. 이 같은 내용은 영친왕비가 1919년 한 해 동안 쓴 친필일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마지막 장인 12월31일자에는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즐거운 추억은 오직 전하께서 오셨을 때의 기억이다… 슬픔이 변해서 기쁨이 되었던 것이다"라고 적혔다. 이듬해 4월 한말 조선 마지막 황태자의 결혼식이 열렸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정종수)은 18일 영친왕가 관련 희귀자료 700여 점과 일기ㆍ서신의 번역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유물은 영친왕비의 친필일기 1첩과 편지 39통, 엽서 121매, 사진 514매와 다큐멘터리 필름 등이다.
재일교포 하정웅씨가 일본에서 수집한 유물로, 지난 2008년 12월 주일본한국대사관에 기증한 것을 문화재청이 '환수'받아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ㆍ연구해 왔다. 문화재청은 "1920~1960년대 초 대한제국황실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하며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왕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영친왕비의 친필 일기는 1919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총 136일의 기록이다. 결혼을 앞둔 신부의 기대과 연민, 비록 정략결혼이지만 일본인으로서 영친왕의 조국 조선에 대해 품은 관심과 호기심이 혼재한다.
편지 39통 중 순정효황후가 영친왕 부부의 안부를 묻는 친필 한글편지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1960년대 일본 특파원 김을한이 덕혜옹주와 영친왕의 환국을 논의한 편지는 긴박함을 생생하게 전한다. 친지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엽서, 일본거주 조선왕실 사람들의 경제적 지원요청 편지 등은 당시의 어려움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500여 장의 사진에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을 모시고 서북순행(西北巡行)하는 사진도 포함됐다. 순행장면에는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 외에도 덕수궁 석조전 등 궁궐사진과 요절한 진 왕자의 사진 등은 희귀 사료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이들 자료에 대한 도록 발간과 전시를 준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