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개방 강박증후군의 부활

과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절대선인가. 어느 나라와 어떤 조건으로 하든지 안 하는 것보다는 좋은가. 여권 내부에서조차 ‘막말잔치’로 치닫고 있는 최근의 FTA 논란을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문제다. 답은 ‘하기 나름’이다. 안 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개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이다. 한미 FTA는 우리의 살길이다”는 정부의 최근 행보는 개방의 조건이야 어떻든 개방만 하면 된다는 뜻으로 비친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소극적인데 정적인 공화당이 지지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견주어 찬사와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FTA는 어떤 조건으로 누구와 체결하느냐에 따라 국민경제에 득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경제발전 수준이 유사한 나라끼리 FTA를 맺으면 서로 시장이 확대되고 국제분업과 경쟁이 촉진돼 둘 다 득을 볼 확률이 크지만 경제발전 수준의 격차가 큰 나라들의 경우는 장기적으로 선진국에는 득이 되고 후진국에는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생산성 격차가 큰 경우 후진국의 기존 산업은 값싼 선진국 제품에 압도돼 도태될 가능성이 큰 반면 새로운 산업은 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린턴이 멕시코ㆍ캐나다와 FTA를 맺은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애국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생산성이 한참 앞서 있는 미국과 우리가 FTA를 맺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나라들이 자체역량이 성숙하기 전에는 한사코 보호무역을 고수하다가 경쟁력에 자신이 붙으면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듯 자유무역의 열성적 전도사로 변신하는 것이다. 지금은 자유무역의 원조로 알려져 있는 영국도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 최고의 공업국으로 발돋움하기 전에는 유치산업보호관세, 보조금 지급, 수출품원재료에 대한 관세환급 등 요즘 우리의 정책과 다를 바가 없었고 지금 우리에게 FTA의 이름으로 개방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도 130년 동안이나 35~55%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제조업 관세를 유지한 지 오래지 않다. 경제 쓰나미가 될 수도 있는 세계 제일의 경제강국 미국과의 FTA, 지킬 것은 확실히 지키고 얻을 것은 최대한 얻어내는 고도의 전략과 철저한 준비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협상의 구체적인 목표와 전략은 고사하고 준비나 제대로 되어 있는지 의심스럽다. 전략을 공개하면 협상력을 잃기 때문에 공개 못한다는데 국제협상의 최고수 미국은 구체적인 사안별로 협상 목표와 전략을 담은 협상 통보문을 이미 의회에 제출했고 의회는 이것을 인터넷에 올려 국민에게 공개하고 있다. 여론의 압력만큼 강력한 협상카드는 없기 때문이다. 제2의 개항이라는 국운이 걸린 이 중차대한 문제를 정작 협상카드로 써야 할 품목들은 협상이 개시되기도 전에 몽땅 양보해놓고 훨씬 단순한 한ㆍ칠레 FTA도 3년 이상 걸린 협상과정을 미국 측 사정에 맞춰 일년 내에 끝내야겠다며 내용은 알려고 들지도 말라는 개방 강박증 환자들의 ‘묻지마 협상’을 지켜보며 첫 번째 개항의 악몽을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