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고물상과 나비효과

지난 85년 3월1일 청주에서 고물상을 하는 조모씨는 공사현장에서 버린 흙더미 속에서 절에서 쓰는 북인 청동금구(靑銅禁口) 한 점을 발견했다. 그 금구에는 놀랍게도 ‘흥덕사(興德寺)’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관련 학계는 이 소식을 듣고 발칵 뒤집혔다. 흥덕사는 바로 독일의 쿠덴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보다 63년이나 앞서는 불경 ‘직지(直指)’가 인쇄된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흙을 파낸 장소는 한국토지공사에서 사업시행 중인 충북 청주 운천지구 택지개발사업 현장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개발사업 시행 전에 문화재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발굴조사를 실시하도록 해 동종ㆍ금강저ㆍ향완ㆍ치미 등 많은 양의 유물을 발굴했다. 그 후 절터는 보존됐으며 절터의 한쪽 편에 고인쇄박물관이 건립돼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 수많은 관람객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이 사건은 토지공사가 각종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화재 보존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문화재에 대한 보존조치가 없는 개발사업은 사업수행에도 심각한 어려움이 될 뿐만 아니라 엄청난 문화재의 훼손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토지공사 내에 문화재조사팀을 구성하고 문화재 전문직원을 채용했다. 사업후보지 조사 시점부터 철저하게 문화재를 조사하고 그 처리대책을 수립ㆍ시행했다. 97년에는 공사에 토지박물관을 설립, 개발사업과 관련한 문화재 보존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그 결과 대구 칠곡2지구, 대전 노은지구 등 많은 사업지구에서 문화재가 보존됐고 문화재로 인한 공사중단 사태는 거의 완벽하게 방지할 수 있게 됐다. 더 나아가 사업지구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한곳에 모아 사적공원을 조성함으로써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도시환경을 조성, 주민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카오스(Chaos)이론에 따르면 북경 하늘을 나는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폭풍우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하나의 작은 변화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매한 학자나 행정가의 지적이 아니라 한 재활용품 수집가의 행동이 오늘날 이러한 문화재 관리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한 계기가 됐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여하튼 개발이 최우선시되던 시절을 지나 환경과 문화유산의 보존이 체계적으로 자리잡게 된 오늘 문득 낡은 밀집 모자에 리어카를 끌고 사업지구 주변을 배회했을 한 재활용품 수집가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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