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보수사 24일만에 “미완의 종결”

◎“조직적 특혜아닌 개인 부정” 결론/깃털론 등 숱한 의혹… 서둘러 봉합/인허가·로비자금 비리는 손도안대한보 수사가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 등 9명을 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지난달 27일 수사에 착수한지 24일만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비리의혹을 불러 일으킨 이 사건은 그러나 정·관계에 대한 수사 성과가 기대에 못미쳐 「미완의 수사」로 불릴 수 밖에 없게 됐다. 성역없는 수사를 했다는 검찰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의혹만 키워 놓은 채 서둘러 봉합한 인상이 짙은 것이다. 결국 수서택지 특혜분양사건처럼 「실체 규명」이라는 국민적 요청은 미궁으로 빠질 위기에 처했다. 검찰은 앞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고소사건 수사를 통해 그동안의 의혹을 해소하는 선에서 이번 수사를 공식적으로 매듭지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외견상 상당히 빠른 수사 행보를 보이는 등 총력전을 펼쳤다. 대검 중수부 1, 2, 3과가 모두 수사에 투입돼 연일 철야조사를 벌였다. 설 연휴에도 수사를 멈추지 않았다. 제기된 의혹의 폭과 깊이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수사 결과도 풍성하다. 구속자 9명의 면면이 이를 뒷받침한다. 전청와대 총무수석이자 현역 의원, 내무부장관, 장관급의 국회 재경위원장 등은 직위도 그렇거니와 김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민주계 실세다. 제 1야당인 국민회의의 2인자와 여당 공식 서열 3위인 전당대회 의장은 물론 현직 시중은행장 2명과 재계 13위였던 한보그룹의 총회장도 포함됐다. 그러나 그간 제기된 의혹과 최소한의 상식이라는 기준에서 본 검찰의 수사결과는 함량 미달이라는 평가를 면키 어렵다. 5조원에 이르는 대출금 중 비리 혐의를 잡은 것은 96년도분 1조여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4조여원은 은행 자체 판단에 따라 정상적으로 대출이 이뤄졌다고 검찰은 결론지었다. 특히 한보에 대한 대출이 급증한 94, 95년에는 철강경기가 좋아 한보에 은행이 자발적으로 대출했다고 밝혔다. 더구나 지난해 대출금 1조원중 대출 커미션이나 외압을 확인한 것은 신광식·우찬목 두 은행장이 대출한 6천7백억원 뿐이다. 이 때문에 대출 커미션 수수나 대출과정에서의 외압 부분에 대한 수사는 당연히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선에서 그쳤다. 검찰은 대출 외압의 총지휘자로 홍인길 의원을, 보조자로 황병태·정재철 의원을 꼽았다. 그러나 홍의원이 민주계 실세라 해도 한보에 집중 대출을 한 4개 은행을 주물렀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여기에 홍의원이 스스로를 「깃털」로 지칭한 점을 감안하면 홍의원의 뒤켠에 「몸통」, 즉 실세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보철강 당진제철소의 각종 인·허가 비리에 대한 수사 결과는 차라리 「무」에 가깝다. 제철소와 관련해 사업허가, 부지의 공유수면매립 계획변경, 매립면적 편법확대, 코렉스공법 도입허가 등 숱한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검찰은 김우석 장관이 당진제철소와 국도를 잇는 해안도로 건설 시기를 앞당겨 주는 청탁과 함께 2억원을 받은 사실만 밝혀냈을 뿐이다. 박재윤 전통산부장관은 비공개로 조사를 받았으나 인·허가 과정에서 금품을 받거나 위법한 행정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됐다. 한마디로 검찰이 나서서 이들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검찰은 또 한보그룹이 2천1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밝혀냈으나 이 가운데 로비자금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2백50억원에 대해서는 사용처를 밝히지 않았다. 사용처는 범죄 사실과 무관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돈이 정치자금으로 제공됐다면 여기에는 「기대이익」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검찰은 한보가 정치인에게 준 돈의 명목을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단순히 「정치자금」으로 단정, 범죄구성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권력형 비리사건」이 아닌 「전형적인 한국형 부정부패사건」으로 결론지었다. 정권이나 권력의 주체가 한보철강 인·허가나 특혜대출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뒤를 봐준 것이 아니라 정치인과 공직자, 은행장들이 개인적으로 금품을 받고 한보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보가 10년 가까이 누려온 특혜를 불과 23억5천여만원의 돈을 나눠받은 몇몇 정치인과 은행장의 부정부패로 규정한 검찰의 결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제 공은 국회 국정조사로 넘어갔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의 속성상 국정조사가 한보의 인·허가 및 특혜대출에 대한 정책결정과 집행 과정에 집중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보다는 현철씨와 청와대에 대한 정치적 공세와 방어가 되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한보 부도의 진상은 묻히게되고 시간이 갈수록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성종수> ◎한보특혜의혹 사건 일지 ▲1월23일=한보철강 최종부도처리 ▲1월24일=검찰, 부도경위등 내사 착수 ▲1월27일=대검중수부, 한보의혹사건 수사착수 공식발표. 한보철강·(주)한보 법정관리신청 ▲1월30일=정태수 총회장 소환 ▲1월31일=정태수 총회장 구속수감 ▲2월1일=이철수씨 소환등 금융권 수사착수 ▲2월4일=이형구·신광식·우찬목씨 등 전현직은행장 3명 소환 ▲2월5일=신광식·우찬목씨 구속수감. 홍인길·권노갑 의원 각각 7억·5억원 수수보도 ▲2월10일=홍인길·정재철 의원·정보근 회장 소환. 김덕룡 의원등 여권인사 4명 선거자금 수수보도 ▲2월11일=홍인길·정재철 의원 구속수감 ▲2월12일=김우석 전내무·황병태 의원 소환조사 ▲2월13일=김우석 전내무·황병태·권노갑 의원 구속수감 ▲2월18일=김현철씨, 국민회의 한영애 의원 등 6명 고소 ▲2월19일=한보 특혜대출 의혹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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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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