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이성태 총재 "큰 배는 방향 바꾸기 늦다" … 통화정책 점진적 전환 강조

'마지막 금통위' 주재 이성태 총재 "통화정책은 소신만으로 하는게 아니다"<br> "나라제도 운영할땐 절제된 의사소통 있어야" 정부 잦은 舌禍에 쓴소리<br>"일관성 갖춰야 시장신뢰" 가계부채 심각성 경고도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소공동 한국은행에서 임기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호재기자


11일 재임 중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한 시간 남짓 회의를 끝낸 후 가진 간담회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한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총재가 평소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개인의 소신과 국가 경제를 얘기하는 외부의 목소리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며 "마지막 금통위에서도 고민을 털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가득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평소의 두배 가까운 시간 동안 진행된 간담회에는 4년 임기를 끝내는 소회와 함께 차기 총재와 정부 당국자들을 향한 고언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그가 이날 마지막으로 던진 메시지는 크게 다섯가지. 이 총재는 우선 "통화 정책은 소신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는 말을 했다. 취임 당시 "불확실성의 위험을 감내하면서도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총재의 자격으로 내건 점을 기억하면,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중앙은행 수장의 한계를 얘기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총재는 '인플레 파이터'라는 닉네임에서 보여주듯이 역대 어느 총재보다 '매파'적 기질을 보였다. 하지만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목소리 톤은 현저히 낮아졌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금리 인상은 안 된다'고 나서는 바람에 총재의 역할은 사실상 사라졌고, 결과는 13개월 연속 금리 동결로 이어졌다. "소신이라는 것은 자꾸 바뀌어야 한다. 상황이 바뀌는데 소신이 안 바뀐다면 그것은 잘못된 정책"이라는 그의 발언에는 중앙은행 수장이 겪는 현실적 고충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 총재가 두번째로 밝힌 메시지는 일관성이다. 그는 "통화정책이 파급되는 시차가 짧아졌다"고 전제, 중앙은행 수장이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에서 일관성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특히 "나라 전체적으로 제도를 운영하는데 좀 정제된, 절제된 의사 소통이 있었으면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잦은 '설화(舌禍)'로 시장을 혼란에 빠트리곤 하는 정부 당국자를 꾸짖음과 동시에 차기 총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에둘러 당부하는 말이다. 세번째로 던진 메시지는 통화 정책의 점진적 전환의 필요성이다. "헬리콥터로 돈을 뿌릴 수는 있어도 한꺼번에 거둬들일 수 없다"고 했던 이 총재는 이날도 "큰 배는 방향 전환이 빨리 안 된다"며 점진적인 통화 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정부를 향해 쓴 소리를 던졌다. 그는 "당장 눈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좌로, 우로 하다 보면 서 있는 자리가 제대로 된 궤도에 있는지 잊어 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통화 정책은 경기 부양이라는 틀에 얽매여 함부로 흔들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특히 "미리 미리 움직여야 한다는데 대해서도 설득과 합의가 쉽지 않다"고 말해 금리 결정을 놓고 안팎과 싸웠던 힘겨웠던 과정을 되새겼다. 이 총재는 임기 말기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가계 부채를 꼽았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다시 한번 가계 부채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 경제가 생산성이 높지 않은 부분에 자원을 너무 많이 투자하고 있으며 그 경로에 주택담보대출과 가계 부채가 있다"면서 "당장 문제가 생길까 걱정해서 가계 부채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금융 당국자들의 "가계 빚을 걱정한다면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된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총재는 "흔히 금리가 올라가면 채무 부담이 늘어나니까 올려서는 곤란하다는 해석이 있다"며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는 정반대다. 부채가 많으면 올려야 더 느는 것을 막고 여력이 있는 사람은 부채를 줄이게 한다"고 밝혔다. 가계 부채의 부실 확대를 막기 위해서라도 선제적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마지막으로 한국 경제의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 자산 버블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자산의 버블 징후가 현재 잡히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얘기했다.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도 아니라는 판단이다. 그는 "지금은 전체적으로 온도가 상당히 높아져 있는 상태다. 이런 때는 조심해야 한다"며 우리 경제의 자산 버블이 위험 수위에 올라와 있음을 내비쳤다. 특히 주택 가격에 대해 "지금 경계하고 있는 것은 높아진 가격 수준이 계속 더 올라가면 곤란하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 추가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은 억제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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