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한식세계화&영부인


음식 문화의 전파에는 이동과 맛이라는 두 가지 전제가 붙는다. 공간의 이동이 자유롭고 정보의 전파가 순식간에 이뤄지는 요즘에는 후자가 특히 중요하다. 아무리 후미진 골목에 위치해도 맛집이라는 소문을 타면 대박이 터진다. 맛에는 돈이 들어간다. 터키요리가 발달한 이유는 술탄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드넓은 오스만 투르크 전역에서 채취한 신선한 재료가 이스탄불에 모여든 덕분이다.


△프랑스 요리의 탄생에는 이동과 맛(돈)의 요소가 고루 담겨 있다. 16세기 중반 풍요롭던 이탈리아 피렌체의 지배자 메디치 집안의 카트린이 프랑스 왕실에 시집가면서 대동한 요리사에 의해 프랑스 요리의 씨앗이 뿌려졌다. 신구교 간 갈등 속에 프랑스 역사상 최대의 비극인 바르톨로메오축일의 학살을 주도한 카트린에 이어 메디치가 출신의 또 다른 프랑스 왕비인 마리 덕분에 프랑스에서는 요리문화와 발레가 꽃피었다. 오늘날로 치면 영부인에 의해 프랑스 요리의 세계화가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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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씨가 주도한 한식세계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가을 국정감사에서 예산 769억원을 낭비한 사례로 질타 받은 데 이어 올 2월 국회가 감사요구안을 의결하고 엊그제 예산정책처는 예산 인력 낭비사례로 꼽았다. 예산 50억원 전용 시비와 함께 김윤옥씨가 한식세계화 관련 책자를 발간하는 데 1억원을 유용했다는 논란도 일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시장조사도 없이 영부인이 한다니까 덜컥 예산을 쏟고 추진단을 발족하는 등 사업을 벌이다 망신을 자초하고 말았다.

△국민은 기품 있는 영부인을 기억한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을 싫어하는 이들도 '영부인 육영수'는 기린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일리노어는 남편의 바람기로 맺힌 한을 감추고 참전용사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미셀 오마바도 아이들의 건강을 돌보는 캠페인을 조용하게 치르고 있다. 인기 없는 영부인이 간여해 사업을 그르쳤어도 한식세계화는 여전히 우리의 과제다. 프랑스 요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는 수백년이 걸렸다. 한식세계화는 영부인다운 기품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노력할 일이다. /권홍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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