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철밥통 강철대오

창조경제만큼 막연한 '정상화'<br> 민영화법 동원해도 좌초. 해임으로 될 일이라면 벌써 해결 <br>정치권·정부·공기업 유착고리 끊어내지 않으면 절대 못깬다


신년 모임에서 만난 친구 A. 누구나 알 만한 공기업 간부이자 아내와 두 딸을 먹여살려야 할 가장이다. 맨 먼저 하소연. "초등학교 다니는 딸애가 철밥통이 뭔지를 물어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론으로부터 하도 두들겨 맞아 이제 가족보기에도 민망하다고 했다. 이번엔 불만. 왜 지금에 와서 공공기관 개혁이냐는 볼멘소리다.

따지고 보면 새 정부가 처음부터 개혁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지난해 2월 발표한 140대 국정 과제를 보면 공공 부문 정책은 부채관리가 전부였다. 선거 바람에 한 표가 아쉬운 마당이니 그때는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 출범 이후에도 골격이 달라진 게 없다. 지난해 7월 내놓은 공공기관 합리화 대책에서 제시된 정책목표는 국정과제의 차질 없는 실천이다. 그런데 국정감사 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 지시에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파티는 끝났다"고 선언하면서 돌연 이슈화했다. 국정원 댓글사건 같은 정치적 이슈를 물타기하려는 저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게 A의 의구심이다.

배경이 뭐든 공공기관의 방만·막장경영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다. 정치적 의도라는 시각은 사안의 본질을 희석시킬 뿐이다.


돌이켜 보면 역대 정부는 참여정부를 빼곤 이번보다 더한 강도의 개혁을 요구했다. 핵심은 민영화. 민영화 촉진법을 만들었는데도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DJ정부는 민영화 촉진법 대상 공기업의 조기 매각을 위해 CEO 보수를 넉넉하게 주고 자율 경영도 보장해줬다. 한전 사장의 연봉이 1억원 남짓한데도 덩치가 작은 가스공사 CEO의 연봉은 4억원이 넘었다. 노조와 타협 말고 소신껏 경영해 매각을 성사시키라는 법 취지는 에너지 공기업의 연대파업 한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MB정부가 민영화 기반을 다진다며 두 개로 쪼갠 산업은행은 정책금융공사와 다시 합쳐질 처지다.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해줬는데도 말짱 도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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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개혁의지만큼은 역대 정부를 능가한다. 박대통령은 신년기자 회견에서 3대 경제혁신 과제로 언급했다. 현 부총리는 솥을 깨고 배를 가라앉히는 파부침선의 각오를 밝혔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자신보다 선배 공직자 출신이 다수인 산하 공기업 수장을 불러 "해임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과연 이번엔 다를까. 솔직히 미심쩍다. 기관장 해임 정도로 고칠 수 있다면 공공기관의 문제는 진작 해결됐을 것이다. 정부가 내건 '정상화'라는 개념은 창조경제만큼이나 막연하다. 개별 기관에 국한되는 소극적인 개념이다. 공공기관 전체 조직과 인력을 아우르는 큰 그림이 없다. 부채와 복지후생 줄이기도 시급하지만 그보다는 공공기관의 조직과 기능 개편이 더 중요하다. 정부와의 역할 재조정도 긴요한 과제다. 그러지 않고서야 4대강 발 수자원공사의 전철을 피할 길이 없다. 통폐합은 물론 민영화의 길도 열어둬야 한다.

백번 양보해 정상화라 치자. 비정상을 정상화한다는데 인사 정상화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낙하산 인사는 새 정부에선 없을 것"이라던 박 대통령의 1년 전 발언을 이제 와서 들먹여 봐야 아무 짝에 소용없다. 부총리가 개혁을 외치는 그 순간에도 정치권 백수들이 물 좋은 자리를 줄줄이 꿰찼다. 정치권의 비호를 받는 그들을 장관이 내칠 수 있겠는가. 장관 자리부터 걸어야 할 것이다.

'신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안다. 이번에도 소나기라는 것을. 낙하산이 내려오는 한 밥그릇을 챙길 수 있다고. 엎드려 뻗쳐식 대책으론 철밥통을 절대 깨지 못한다. 정치권-정부-공공기관을 연결하는 고리는 강철대오다. A가 던진 말이 귓전을 맴돈다. "과연 누가 즐기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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