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소신 위에 소송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가 2회전에 돌입했다. 지난 24일로 인수 계약기간이 끝났다.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나 하나금융 중 어느 한쪽이 파기를 선언하면 딜(deal)은 물 건너가게 된다. 계약 연장을 위해 막바지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외환은행 매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계기는 12일 금융위원회의 결정.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고등법원 판결 이후로 미룬 것이다. 금융위 결정을 두고 공무원의 복지부동이니, 변양호 신드롬이니 말들이 많다. 하지만 금융위 안팎에서는 예견된 결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책적 판단에 대한 보호막이 전무한 현실 속에서 사법 판단을 앞질러 용단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게 공통된 반응이다. 이해득실을 따져 승인을 내줬다가 나중에 소송에라도 휘말리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는 얘기다. 총대를 맸다가 정신적인 고통은 물론 막대한 경제적인 비용까지 감내할 공무원이 과연 몇이나 되겠냐고 항변하기도 한다. 제3자의 입장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겠지만 비슷한 결정을 내릴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아직도 시사용어로 변양호 신드롬이 등장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으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구속된 시기를 기준하면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여전히 정책적 판단을 내릴 때마다 국익에 앞서 소송을 걱정한다. 미국의 주요 부처는 소송에 대비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책정하고 있다. 또 일부 규제관련 기관은 전체 직원 중 변호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30%를 웃돈다고 한다. 이는 조직이나 조직원의 소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안전망으로 비춰진다. 우리의 사정은 어떨까. 일례로 금융위가 외부 기관이나 개인으로부터 소송을 당했을 때 쓸 수 있는 예산은 한 해 6,000만원에 불과하다. 올해는 이마저도 5월에 바닥을 드러냈다. 사회가 변하다 보니 우리나라 금융당국과 담당 공무원이 소송에 노출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공무원들이 소송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국익을 위해 소신껏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야 할 때다. "국익을 생각해서 힘든 결정을 내렸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겨 소송이라도 당하면 누가 변호사 비용을 대주는 것도 아니잖냐"는 한 공무원의 푸념이 아직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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