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美서 실패한 ESOP

김영만 주미 한국상의 명예회장

대우종합기계 매각과 관련해 한국정부가 종업원지주제(ESOP)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미국에서 발원한 이 제도를 한국에 그대로 도입할 것인지를 논의하기에 앞서 ESOP이 본고장에서 어떠한 취지로 입법화됐으며 지금까지 이 제도가 운영되면서 어떤 문제점이 제기됐는지 등의 실상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ESOP은 미국에서 지난 74년에 입법화된 제도다. 취지는 종업원들이 기업의 소유에 참여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시장경제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며 부(富)를 균등하게 분배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근로자의 가치와 존엄성, 그리고 웰빙이 추구되고 종업원의 잠재력이 극대화된다는 지향점에서 제도는 출발했다. 미국에서 ESOP을 채택하는 회사는 현재 1만개에 이르는데 이들 회사의 노조조직률은 4% 내외로 극히 낮다. 이 제도의 장점은 기업주에 대한 세제혜택과 종업원에 대한 인센티브로 경영을 개선하고 주식의 종업원 보유로 우호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회사를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 보면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이익을 극대화하고 임금과 복리후생을 포함한 경비를 절감하며 노조의 입장에서는 주식소유를 통해 소득을 확대할 수 있고 기업 내 여러 상충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제도는 창업자가 세제혜택을 받고 5~10년에 걸쳐 경영권을 완만히 승계하는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회사를 갑자기 매각하거나 정리할 경우 창업주에게 부과되는 세금부담을 덜 수 있다. 종업원으로서는 회사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평안한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종업원들은 자기 돈으로 우리사주를 매입하지 않고 일단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차입, 주식을 매입하고 회사의 배당이익으로 차입금을 상환하는 인센티브가 도입됐다. 사회적으로는 소유를 평등하게 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결함을 아우르는 이상적인 제도로 간주됐다. 하지만 ESOP은 미국에서 시행 30년 만에 실패한 제도로 결론지어졌다. 실례를 들어보자. 80년부터 미국 철강업계는 누적적자로 생존전략 수립에 여념이 없었다. 비용절감을 위해 복리후생비를 포함한 인건비를 줄여야 했고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시설개체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 ESOP 도입이 논의됐고 베들레헴스틸을 비롯, 많은 철강회사가 생존전략 차원에서 ESOP을 도입했다. 하지만 미국 철강회사에서 이 제도는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 항공업계의 불황은 9ㆍ11 테러 이전부터 심각했다. 90년부터 경영위기를 겪고 있던 유나이티드항공은 94년에 비용절감을 위해 ESOP을 도입했고 이에 종업원 대표가 이사회의 4분의1을 차지했다. ESOP의 성격상 종업원 대표가 경영에 수동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나이티드에서는 노조가 경영에 적극 참여했고 최고경영자(CEO) 임면에도 발언권을 행사했다. 미국 항공업계는 9ㆍ11 테러로 미국 항공기 이용 기피현상이 가중되면서 극심한 경영난을 겪게 됐다. 높은 고정비와 임금 그리고 여행감소로 인한 매출감소라는 역경이 닥쳐오면서 겉으로는 유나이티드가 다른 항공사보다 쉽게 난관을 극복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종업원이 주주이니 비용절감과 경영개선에 협조적일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유나이티드항공은 결국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베들레헴스틸과 유나이티드항공의 경우에서 보듯 ESOP은 처음에 사회적 관심과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몇가지 시사점을 배울 수 있다. 첫째, ESOP은 종업원 300명 내외의 주식이 공개되지 않은 소규모 개인회사에 적합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있고 주식이 공개된 대기업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둘째, 종업원과 주주의 이해가 상반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경영자와 종업원, 그리고 노조간에 특별한 신뢰가 구축돼야 하는데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종업원은 경영에 참여하면서도 새로운 역할과 여건에 익숙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생존을 위한 비용절감의 압박을 이겨나갈 이해당사자간 관계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에 좋은 예가 있다. 대한통운이 임직원과 노조위원장이 사재를 담보로 자금위기를 극복하고 근로자가 상여금과 복지금을 반납, 비용절감에 앞장서면서 모범적 노사관계를 통해 모기업 부도로 인한 위기를 극복한 적이 있다. ESOP과 같은 외국의 제도를 도입하기보다는 경영자와 종업원이 회사를 살리겠다는 한마음으로 각자의 업무에 충실하고 서로 존경하며 보완하는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실패한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하다가는 또 다른 부실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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