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22일] 미국 유대인


1654년 8월22일 뉴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떠나 한달 보름여 동안 대서양을 건넌 피어 트리호에서 야코프 바르심손(Jacob Barsimson)이 내렸다. 당시 그의 나이가 얼마였는지, 직업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름이 기억되는 것은 ‘미국 땅에 발을 들인 최초의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바르심손의 도착 1년 전에 영국군과 인디언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책(wall)을 세워 훗날 ‘월 스트리트’라는 지명을 낳은 네덜란드 서인도회사의 총독 스토이베산트는 유대인의 내항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한달 뒤 더 큰 골칫거리가 생겼다. 유대인 23명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이다. 더욱이 서인도회사는 이들의 거주를 허용하라는 지령까지 보냈다. 네덜란드가 포르투갈 식민지인 브라질을 일시 점유했을 때 공을 세웠다는 이유에서다. 원칙주의자에 신앙심이 깊었던 총독과 달리 종교에 연연하지 않던 뉴암스테르담 특유의 분위기도 유대인 정착에 도움을 줬다. 도착 3년 후 시민권을 따내 납세와 병역의무까지 지던 유대인들은 영란전쟁에서 네덜란드에 승리한 영국에 의해 뉴암스테르담이 뉴욕으로 바뀐 뒤 더 큰 자유를 얻었다. 구약성서를 중시해 ‘유대교 신파’라고까지 불린 영국계 청교도가 관대하게 대해준 덕분이다. 이민 354주년을 맞은 미국의 유대인은 700만명으로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보다 150만명이나 많다. 전체 미국 인구의 2.5%에 불과한 이들은 미국은 물론 세계의 정치와 산업, 금융과 언론, 교육계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 미국 명문 대학생의 20%는 유대인으로 채워진다. 유대계 이민을 받아들인 자유와 관용이 없었다면 오늘이 가능했을까. 번영은 복수와 증오ㆍ차별보다 용서와 사랑ㆍ관용에서 꽃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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