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수시공시 부담 완화의 의미

안전한 항해를 위해 어두운 바다를 밝혀주는 것이 등대의 역할이라면, 증권시장을 밝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업공시제도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수시공시제도란 경영 활동 중에 발생하는 기업의 주요 정보를 그때그때 신속하게 시장에 알리는 것을 말한다. 거래소공시규정 등에서 이러한 수시공시사항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는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 항목 수가 230여개에 달했다. 그러나 올 4월부터 기업의 수시공시 의무사항이 134개로 대폭 축소됐다. 이러한 수시공시 의무 경감은 두 가지 관점에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첫째는 균형의 관점이다. 지금까지의 제도 개선은 지나치게 투자자 보호 측면에만 치우친 경향이 있었다. 특히 IMF 이후로는 공시 의무의 지속적인 증가만 있어왔다. 그러다 보니 기업에는 상장 유지를 위한 가장 큰 부담의 하나로 작용해왔다. 따라서 이번의 제도 개선은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해 투자자 보호와 상장 편익이라는 두 가치를 적절히 조화하고자 함이다. 둘째는 자율의 관점이다. 우리 수시공시제도는 기본적으로 열거주의 방식에 기초하고 있다. 즉 의무로 열거된 사항은 반드시 공시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항은 안해도 무방한 구조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공시 행태는 주로 수동적인 경향이 많았다. 또 중요하지 않은 사항도 일단 의무사항이면 해야 하는 모순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자율공시항목의 도입이다. 이와 같이 금번의 제도 개편은 공시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를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아예 수시공시체제 자체를 미국과 같은 포괄주의 방식으로 변경해 기업의 완전자율에 맡기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과 우리는 기본적인 법 체계와 제도의 발전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미국은 포괄주의 방식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와는 반대로 수시공시 의무를 법적으로 강화하는 추세다. 이런 공시 철학의 변화는 시장 관리 기관인 거래소에 보다 큰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수시공시 관리의 효율화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다. 규정의 제ㆍ개정과 해석의 명확화를 통해 상장기업과 투자자에 불필요한 혼란을 주지 않아야 한다. 또한 상장기업도 자율공시 풍토 정착을 위한 공시 역량 강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기업의 공시 행태에 대한 준엄한 시장 감시자로서의 역할은 투자자의 몫이다. 성실한 공시를 통해 투자자에게 신뢰를 주는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에 비해 시장에서 선호되고 높이 평가되는 환경이 조성돼야 투명하고 공정한 증권시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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