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 3차원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가 처음 나왔을 때만해도 이 영화는 내용 보다는 ‘기술적 진보’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관객들도 영화를 보러 온다기 보다는 3차원 캐릭터가 인간처럼 움직이고, 말하는 신기한 광경을 지켜보는 것에 더 열중했다. 때문에 그때의 3차원 애니메이션은 ‘영화적 성취’가 아니라 ‘과학적 결과물’에 더 가까웠다는 평을 얻었다. 픽사와 함께 세계 3차원 애니메이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드림웍스의 신작 ‘헷지’도 이런 과학적 성과가 묻어난다. 영화는 ‘토이 스토리’이후 급속히 발전한 애니메이션 기술을 과시라도 하듯 엄청난 기술적 진보를 곳곳에 담고 있는 것이다. 캐릭터는 마치 살아있는 듯 숨쉬는 숨결까지 도드라져 보이고, 움직임도 부드럽다. 배경도 현실 같다. 가끔은 실사영화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영화는 최근 할리우드에서 대세를 이루는 동물 애니메이션. 겨울잠을 자고 막 일어난 동물들 앞에 어느날 정체불명의 ‘담장(hedge).’이 나타난다. 인간들의 토지개발로 생긴 울타리 때문에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빼앗긴 배고픈 동물들이 인간세상을 습격하는 내용이 기둥 줄거리다. 여기에 인간문명에 대한 풍자, 할리우드적 가족주의 등을 녹여 넣었다. 빠른 스토리진행에 경쾌한 음악까지 어우러져 영화는 시종 유쾌하고 떠들썩하다. 가족이 함께 보기엔 안성맞춤이다. ‘헷지’의 최대 재미는 하나하나 생동감 있고 사랑스러운 등장 인물들. 능글맞고 잔꾀가 많은 너구리 ‘알제이’, 예민하고 걱정 많은 거북이 ‘번’, 외모 콤플렉스에 빠져있는 스컹크 ‘스텔라’ 등 동물의 실제 습성을 차용한 인물 묘사가 귀엽다. 한글 자막판엔 브루스 윌리스ㆍ에이브릴 라빈이, 한글 더빙판에는 황정민ㆍ신동엽ㆍ보아 등 목소리 출연진도 화려하다. 영화의 내용과 등장하는 유머는 지나치게 미국적이지 않고 무난하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초창기부터 등장했던 인간에 대한 풍자, 가족주의 등이 여기에 버무려졌다. 이는 이미 ‘라이온 킹’ㆍ‘토이 스토리’ 등에서 흔히 보던 내용들. 동물의 습성을 활용한 유머들 또한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아이스에이지’,‘마다가스카’ 등 기존 동물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내용을 적당히 변주한 것이다. 이런 내용은 식상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편안하게 다가온다. 아쉬운 것은 영화 제작사가 ‘개미’ㆍ‘슈렉’ 등 기존 가족주의 애니메이션을 벗어나려 노력해 왔던 드림웍스라는 점. 영화는 기술적 진보는 이뤄냈지만 지금까지 드림웍스가 주창했던 ‘내용의 진보’는 보여주진 못한다. 결국 영화는 초창기의 ‘토이 스토리’ 보다 기술적으로 큰 성과를 냈지만, 내용만 비교한다면 대소동이한 영화가 돼 버렸다. 때문에 더 새로운 것을 바라는 관객들에겐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가족들과 손잡고 하루를 즐기기에는 최적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