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종진 옹 "골프도 인생도 즐길줄 알아야 버디죠"

백수 골프모임서 버디 기록… 올해 100세 맞는 이종진 옹 신년 특별인터뷰<br>스트레스 안받고 운동·자극적 음식 피한게 건강 비결<br>"총리가 총대 맸으니 '세종시' 차분히 기다려 봐야죠"


"백수(白壽) 기념 골프모임에서 버디를 기록했습니다. 골프도 인생도 즐길 줄 알아야 버디죠." 올해 백수를 맞는 이종진옹은 지난 11월 충북 충주의 중원골프장 아래코스 8번홀 내리막 파3홀에서 버디를 잡았다며 말을 이어갔다. 이 옹은 언제부턴가 레이디티에서 공을 쳤지만 이날 따라 홀과의 거리가 가까워 보여 140야드 화이트티로 옮겨 샷을 했다. 공은 주위의 "굿샷" 소리와 함께 제대로 된 손맛을 남기며 핀 1m에 붙었다. 자신 있는 퍼팅은 홀컵 벽을 맞추며 '땡그랑' 소리로 버디를 알렸다. 이날 스코어가 어땠는지 거듭 물었지만 이 옹은 농인 듯 진인 듯 "요즘에는 스코어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냥 파를 여러 번 했죠"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언젠가 아들 녀석들이 자기들끼리 골프를 치러 가더라구요. 그래서 나를 빼놓고 갔다고 혼을 냈습니다. 봄이 되면 아들들하고 또 한번 나가야지요."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클럽인 서울컨트리클럽의 창립회원으로 지금도 회원을 유지하고 있는 현역 최고(最古)의 골퍼다. 경기도 고양에 있는 골프장에 올라 있는 그의 핸디캡은 8. 새해 우리나라의 국운이 힘차게 뻗을 것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백수의 나이에도 강연을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 옹을 28일 서울 압구정에 있는 자택에서 만나 활력의 비결을 물었다. 이 옹은 우선 건강유지 비결로 꾸준한 운동을 꼽았다. 그는 보통학교(초등학교) 때 왕복 3시간을 걸어서 통학했고 이때 배운 연식정구는 국가대표까지 지내는 특출한 능력을 뽐내며 54세까지 이어졌다. 4년 전부터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 정도 걷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운동과 더불어 중요하게 여기는 건강 비결은 음식으로 짜고 매운 것을피하고 소식을 한다. "보통학교에서 정구를 칠 때 감독님이 절대 짜고 매운 음식은 먹지 못하게 했어요. 그걸 먹으면 물을 마셔야 되고 물을 마시면 땀을 흘리게 되잖아요. 그래서 쉬 피곤해진다는 게 감독님 말씀이었죠. 요즘에도 김치와 비빔밥은 잘 못 먹어요." 건강유지의 마지막 비결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 그가 말하는 100세 인생은 한마디로 행운이었다. 모든 게 운이었고 그런 운을 잡게 해준 사람에게 고마워하면서 즐겁게 살아온 게 그의 인생이었다. 그가 본격적인 정구선수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선린상업학교 때부터다. 당시 촌에서 자란 그는 농사를 짓든지 아니면 면서기나 군서기를 할 생각이었는데 서당에서 동문수학하다 선린학교에 먼저 들어간 친구가 학교자랑을 하며 입학을 권유했다. 그는 친구의 권유가 아니었다면 그저 촌로로 늙었을 거라며 고마워했다. 선린학교에 들어가 전국 정구 선수권대회에서 우승까지 한 그에게 어느 날 정구부 담임선생님이 "선린 출신 선배가 너를 조선식산은행(현 산업은행)에 추천하라고 한다"며 식산은행에 갈 것을 권했다. 당시 최고 직장은 은행이었고 식산은행,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상업은행 3곳 중 최고는 식산은행이었다. "식산은행은 각 학교에서 전교 1등만 들어가는 곳이었는데 겨우 10등 이내였던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은 정구 때문이었죠. 추천을 해준 선생님과 식산은행의 역대 구두시험 내용을 정리한 책을 주며 격려해준 담임선생님 모두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동안 인생에서 안 된 일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옹은 인터뷰 내내 그런 말은 일절 하지 않고 잘된 일만 기억하고 흐뭇해했다. 이 옹의 어디에도 스트레스가 들어앉을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평생 경제인으로 지내온 이 옹이 경제 분야에서 들려줄 말씀은 없는지 궁금했다. 그는 선린학교 졸업 직전에 경험한 요즘 말로 인턴 때 겪은 얘기를 들려줬다. 당시 12월이 되면 졸업반 학생들은 전원 은행ㆍ회사ㆍ상점 등에 나가 1개월간 실습을 했다. 이 옹은 정자옥이라는 백화점의 과자부에 배치돼 점원으로 근무했다. 근무 첫날 과자점 옆 야채점에서 50세 정도 되는 일본인 여자가 야채를 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장바구니에 야채를 담은 뒤 점원에게 돈을 줘 점원이 계산대로 가는 동안 몰래 죽순 3개를 다시 장바구니에 담았다. "요즘에는 점원이 그런 장면을 봤다면 계산을 하지 않았으니 훔친 거라며 당장 망신을 줬겠죠. 그런데 그 점원은 '깜박 하고 죽순 3개 값을 받지 못했습니다'라며 여자에게 절을 하더라구요. 점원은 어디까지나 손님에게 친절히 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하고, 돈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던 거죠." 이 옹은 그것으로 말씀을 끊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요즘 4대강 살리기나 세종시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국가 사업에도 보약이 될 것 같았다. 찬성이건 반대건 목소리만 높여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차분하게 팩트를 따져 점원이 돈만 받으면 되듯 우리도 국론 분열 없이 4대강을 살리고 세종시를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내친 김에 세종시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이 옹의 고향이 충남 홍성이라는 것도 감안한 질문이었다. 이 옹도 이 대목에서는 조심스러운 듯 말을 아끼며 한마디만 강조했다. "국무총리가 총대를 메고 나섰죠. 국무총리 자리에 있는 사람이 우리 국민 나쁘게 하려고 훼방 놓으려는 것은 아니겠죠. 차분하게 기다려봐야죠." 듣다 보니 덕담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옹은 100세가 되지 않은 인생 후배들에게 충고의 말씀을 해달라는 질문에 이제껏 한순간도 잃지 않던 옅은 미소를 지우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키웠다. "교육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 옹은 말씀과 동시에 방에 들어가더니 평소 애용한다는 지팡이를 들고 나왔다. 아이언 채로 헤드가 잘려나가 언뜻 회초리처럼 생겼다. "버스를 자주 타는데 그때마다 경로석에 앉아서 조는 척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화가 많이 납니다." 그는 버스가 정류장의 정해진 곳에 서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탓에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여야 하는 불편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더한 것은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옹은 말씀은 그렇게 물 흐르듯 계속됐다. 정확히 3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는 조금도 흐트러지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릴 때 잠자리에 누워 할머니에게서 듣던 옛날 이야기처럼 이 옹의 100년 인생은 꺼내도 꺼내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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