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진짜 선진국이 되려면


이민을 떠나는 부모님을 따라 한국을 떠났을 때가 지난 1970년대 중반이니 이국 땅에서 발붙이고 산 지도 벌써 35년이 됐다. 20대 초반에 떠났으므로 조국에서 산 세월보다 타국에서 산 세월이 더 많지만 영혼의 뿌리는 착근하지 못한 채 조국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리움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태어난 나라와 뗄 수 없이 연결된 탯줄과 같은 근원적 그리움이다. 조국을 떠난 모든 이민자들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친절하고 서비스 빠른 나라 그래서일 것이다. 미국에서 45년을 산 마종기 시인이 자신의 시에서 '수십 년의 밤을 불러 꿈꾸는 당신'이라며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이유가. '그대를 지켜보며, 기다리며, 나는 어느 변방에서 산 것입니까'라며 절규한 이유가. '외국에서 오래 손님처럼 살다보면 다음날 고국에서 들리는 소식까지 부드럽다'며 밤마다 모국어로 시를 쓴 이유가. 조국을 방문해 세종로 부근을 걸으며 '그냥 광화문 땅을 밟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빙그레 웃은 이유가. 나 역시 가끔 한국을 방문하면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아니 비행기에 타는 순간부터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리움 속에서 헤매던 조국에 도착하면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사랑스럽다. 사방팔방에서 들리는 소리가 모국어뿐이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한국인이고, 길거리에 한글 간판이 즐비하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꿈 같은 시간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아니, 머릿속에는 온통 대한민국이 너무 발전했고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뿐이다. 거의 모든 물건이 주문하면 다음날 택배로 도착하고 오토바이 택배를 불러 만원을 주면 서울의 강북에서 강남까지 가벼운 서류나 물건을 배달해준다. 자장면 한 그릇도 배달해주고 맛있는 통닭은 밤이 늦도록 배달해준다. 우체국이나 은행에서 3분 넘게 기다리면 "고객님,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라며 허리 숙여 사과한다. 이렇게 친절하고 빠른 서비스를 갖춘 나라가 이 지구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지하철을 탔다가 버스로 갈아타도 환승제도 덕분에 요금 할인이 되고 버스 정류장에는 다음 버스가 몇 분 후에 오는지 알려주는 신호판이 있다. 환승해서 마을버스를 타면 서울의 성곽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성북동 산꼭대기까지 데려다준다. 그뿐인가, 경춘선과 중앙선이 전철화돼 두물머리(양수리)ㆍ덕소ㆍ팔당 같은 경기도 명승지와 강원도 춘천을 편안하게 갈 수 있다. 대한민국 만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의로운 사회 만들어야 그렇다. 대한민국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갈 때마다 아쉽게 느끼는 것이 있다. 바로 사회정의다. 얼마나 정의롭지 못한 일이 많은 사회이기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겠는가. 그러나 정의를 논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가 정의로워졌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지금 이 순간에도 '진짜' 선진국에서라면 큰일 날 일들에 대해 처벌은 고사하고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정의롭지 못한 일이 용납되는 나라'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나라가 국격이 높아지고 진짜 선진국이 되기 위해 꼭 이뤄야 할 과제가 사회정의라는 건 해외동포인 나만의 생각일까.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