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클로컬 금융기업의 부상] <1> 금융 선진국을 향해

단순한 해외진출론 한계 "현지화 하라"

싱가포르의 맨해튼으로 불리는 '래플즈 플레이스(Raffles Place)' . 전세계 106개 은행을 비롯해 모두 500여개의 금융기관이 이곳에 모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시장에만 안주할 경우 추가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옛 소련, 중국, 동남아 등 전세계 곳곳으로 영업 기반을 확대해 나가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단순한 해외진출만으로는 부족하다. 체계적인 현지화 노력이 필요하다. 해외로 진출한 국내 제조업체나 교포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 서비스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우수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단순한 글로벌(Global) 금융회사가 아니라 해외로 진출하되 현지화(Local)를 동시에 추구하는 ‘글로컬(Glocal)’ 금융회사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전망은 밝다. 이미 일부 금융회사들은 국내외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 현지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 현지에서 ‘글로컬 금융회사’로 변신중인 국내 은행 등 금융기업의 현황 및 과제를 기획 시리즈 기사를 통해 살펴본다. 우리은행, 원스톱서비스로 싱가포르 소매금융 공략 주효
신한은행, 이슬람 머니 유치등 PB·IB시장까지 업무 확대
"중장기 프로젝트 참여등 뚜렷한 목표 세운뒤 진출해야"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은 해외로 진출할 때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는다. 후진국에서는 국내에서 쌓은 노하우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반면 선진국에서는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실력을 크게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노리는 싱가포르, 홍콩, 일본 시장 등을 공략하려는 노력도 치열하다. 특히 국내 은행들은 싱가포르 공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금융산업 육성에 적극적인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국민총생산(GDP) 가운데 12%를 금융 산업이 차지할 정도다. 외환시장 규모도 1,700억달러로 세계 4위를 달리고 있다. ◇싱가포르 틈새시장 공략=현재 싱가포르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은 우리·신한·하나ㆍ외환·산업은행 등 5곳이다. 이들은 이미 10여년 전에 싱가포르 시장에 진출한 후 사업영역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소매영업의 ‘꽃’으로 불리는 대출시장에서는 우리은행이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싱가포르 현지인 등을 대상으로 지난해 말 현재 8억 달러의 대출실적을 올렸다. 우리은행의 영업범위는 ▦기업·은행 대상 여신 ▦개인대상 소매금융·신용카드 ▦외환관련서비스 ▦유가증권·차관단 대출 투자 등이다. 우리은행이 현지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비결은 바로 ‘틈새 시장 공략’이다. 우리은행은 DBS(옛 싱가포르 개발은행) 등 현지 지역 은행들의 일반 소매금융 서비스가 한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에 착안해 현지 중소기업들과 현지인 등을 대상으로 ‘원 스톱 금융서비스’ 를 제공했다. 그 결과 괄목할 만한 대출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최종석 우리은행 싱가포르 지점장은 “현지 중소기업과 한국과의 거래가 빈번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영업을 벌인 결과, 2004년 1억 달러에 그쳤던 대출 규모가 3년 새 8배가 증가했다”며 “빠른 은행 서비스를 접목한 것이 대출 증가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IB와 PB시장까지 확대=싱가포르 현지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의 공통점은 프라이빗 뱅킹(PB)과 투자은행(IB)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다는 것. 싱가포르는 현재 ‘프라이빗 뱅킹(PB)’사업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자산 관리와 PB에 주력하면서 전세계 ‘거부(巨富)’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이미 싱가포르 PB시장은 연 2,000억 달러에 달해 홍콩을 능가하고 있다. 싱가포르가 세계 각국의 개인 역외펀드 자금을 운용하는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에 국내 은행들도 역외자금 운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대원 신한은행 싱가포르 지점장은 “국내 은행들이 싱가포르 금융시장에서 주목하는 분야가 바로 프라이빗 뱅킹”이라며 “현지 시장규모가 시간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PB사업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싱가포르와 인근 동남아 지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 및 교포, 현지 협력 기업 등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갖고 안정적인 자산 운용 방법을 전수하고 있다. 아울러 동남아 국가의 채권 투자나 이슬람 머니의 유치, 유로화나 엔화 스왑을 통한 국내 자금 조달 등 IB업무도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전세계 금융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슬람 머니’를 유치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현지 금융기관 등과 포괄적 제휴를 검토중이며,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맞는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작업을 현지 금융기관과 공동으로 진행중이다. 아울러 신용분석업을 확대해 현지 기업이나 현지인 등을 대상으로 대출 등 소매금융 영업의 발판을 마련하는 한편 장기적인 차원에서 인도네시아 루피화 표시의 정부채 투자 참여도 고려하고 있다. ◇정교한 해외진출전략은 필수=단순히 외국에 지점을 세워 여신을 유치하겠다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사고로는 외국 금융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중장기적으로 해외 현지 프로젝트에 참여 하거나 현지 기업 등을 대상으로 금융 컨설팅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뚜렷한 목표를 갖고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태화 산업은행 동경지점장은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국내 은행들은 정확한 목표를 세운 후 이에 맞는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며 “적어도 현지에 진출한 후 5~10년간은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도 금융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은행들이 해외 현지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며 “해외 지원센터 등을 운영해 국내 기업 및 은행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2금융권도 해외진출 가속도
코리안리, 일본등서 두각…아시아 재보험시장 1위
하나대투증권등 은행계증권사 동남아진출 활발
보험·증권 등 제 2금융권의 해외 진출도 가속화되고 있다. 코리안리는 싱가포르와 일본 등지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며 아시아 최고의 재보험사로 등극했다. 또한 하나대투증권 등 은행계 증권사들도 국내에서 쌓은 투자 노하우를 활용, 동남아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중이다. ◇코리안리, 아시아 재보험시장 1위=코리안리는 이제 국내 재보험회사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 플레이어로 평가된다. 코리안리는 전 세계 재보험시장에서 12위, 아시아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한때 아시아 재보험 시장의 맹주였던 일본의 '토아리'가 이제는 코리안리를 벤치마킹 할 정도다. 이처럼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입지를 굳히자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지난해 초 코리안리의 신용등급을 'A-'로 상향 조정했다. 코리안 리가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 금융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최근부터다. 지난 2000년까지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3.6%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소형 우량계약을 중심으로 손해율이 안정된 아시아시장을 공략한 결과 2006년에는 해외 매출 비중이 14.4%까지 올라갔다. 특히 아시아시장 공략에 주력한 결과 해외매출비중 중 아시아가 76%를 차지할 정도다. 싱가포르지점은 코리안리의 아시아시장 개척에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코리안리는 싱가포르에서 34년째 영업을 한 탓에 현지에서도 높은 지명도를 쌓았다. 현지 기업들을 대상으로 재보험 노하우를 전수한 것도 성장을 이끈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코리안리 싱가포르지점은 지난해 베트남에서 15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하고 현재 인도네시아 기업과 재보험 계약 체결을 협의하는 등 동남아시아와 중동, 중국으로까지 영업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이영배 코리안리 싱가포르 지점장은 "코리안리는 싱가포르 시장에서 중요한 금융회사로 인정 받고 있다"며 "영업환경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올해 3,0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은행계 증권사, 속속 진출=은행계 증권사들도 모기업인 은행과 함께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나대투증권의 경우 해외진출 첫 지역으로 싱가포르를 택한 데 이어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9월 국내 증권업계로는 처음으로 싱가포르에 동남아 IB센터를 설립했다. 이들 증권사는 은행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현지 투자 계획을 수립, 집행해 나가고 있다. 하나대투증권은 지난해 7월 싱가포르에 헤지펀드만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회사인 'HFG 인베스트먼츠(Investments)'를 설립했다. 굿모닝신한증권도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진출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은행계 증권사들은 이 지역에서 부동산 PF와 NPL·지분투자, 자원개발, 펀드판매 등을 추진중이다. 굿모닝신한증권의 경우 신한은행과 이슬람 금융 자금인 채권(수쿡)시장의 진출도 검토 중이다. 우리투자증권은 동남아 IB센터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투자 은행출신의 우수 인재를 영입해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한국 주식 매매 뿐 아니라 현지 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및 부실채권(NPL) 매입 등과 같은 자기자본직접투자(PI)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우리은행 등과 함께 한국기업의 해외증권을 현지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영업을 전개하고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금융상품을 현지 네트워크를 통해 판매하는 것도 추진할 계획이다. /특별취재팀=이병관(팀장)ㆍ서정명ㆍ우승호ㆍ문승관기자 comeo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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