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테러사태는 취임 일성으로 고립주의 노선을 천명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개입'(engagement) 정책쪽으로 급선회시키고 있다.부시 행정부는 테러 발발 직전 남아프리카에서 열린 인종차별철폐회의에서 이스라엘측을 옹호하며 회의장을 뛰쳐나오는가 하면 오존파괴 관련 지구촌 환경 협약인 교토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등 초강대국으로서 독단적 행동을 지속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왔다.
미국은 건국이래 전통적으로 세계 정치와 외교에 참여하지 않는 고립주의 노선을 채택해왔다.
지정학적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양 옆에 끼고 있어 유럽과 아시아의 골치 아픈 세계 정사에의 개입을 강요당하지 않고 나홀로 번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테러는 미국정부의 이 같은 현실 인식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테러사태 이후 유럽연합(EU) 등 우방은 물론 러시아, 이란 등과도 그 어느때보다 활발한 국제협력을 추진하느라 여념이 없다.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본토가 유린됐다는 점에서, 또 적군이 불분명하고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 지구촌 시대에 언제 어디서든 또다시 테러가 자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에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우선 이번 테러를 계기로 중국과 같은 라이벌은 물론 쿠바, 이란 등 적성국가도 포함하는 대 테러 동맹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정치는 물론 군사, 외교, 정보 등 모든 분야에서의 긴밀한 국제협조가 전제돼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나토'와 같은 제한된 분야에서의 동맹으로는 21세기 새로운 전쟁인 테러와의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구 소련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이 이번 테러로 시험받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반면 중국 등 경쟁국들은 미국의 대 테러 전쟁 지원을 대가로 각자의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발언권과 위상을 높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나토 가입을 요구하며 신 질서의 주도자로 나설 것임을 시사했고 인도, 파키스탄은 이번 기회를 자신들에게 취해진 제재조치 종결의 계기로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지키면서 국제 대테러 연맹이라는 신 국제질서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지 시험대에 처해있다고 진단했다.
이병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