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은 도쿄 보다 9시간이 늦고 뉴욕 보다는 5시간 빠르다. 이러한 시차 덕분에 런던은 미국과 일본을 잇는 24시간 금융체제의 중심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규모면에서 미 뉴욕증시나 나스닥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런던증시가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부각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미국이나 일본이 대부분 자국기업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런던시장은 시가총액이나 거래규모면에서 외국기업의 비중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다국적 거래가 활발하다.
98년말 현재 런던증시의 상장기업 가운데 영국회사가 2,399개, 외국기업이 522개로 외국회사의 비중이 25%를 차지한다. 외국회사 상장면에서는 미 나스닥의 441개를 앞서는 세계 최대시장이다. 특히 상장주식 시가총액면에서는 총 4조2,303억파운드 중 외국사 시가총액이 2조8,044억파운드로 65%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주식거래대금도 총 3조2,203억파운드 중 외국회사가 2조1,832억파운드로 65%이상을 점하고 있다.
지난 98년 전세계 외국기업 주식거래의 65%가 런던에서 일어났다. 이는 뉴욕증시의 21%, 프랑크푸르트의 3%와 비교할 때 런던증시의 국제화 수준을 상징적으로 엿볼 수 있다. 미국이 런던시장을 탐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유럽 금융중심지로 안주하던 런던은 최근 미 증권거래소의 유럽진출과 단일통화인 유로화 불참에 따른 상대적인 소외라는 외풍에 시달리고 있다.
런던증권거래소는 우선 유로권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 범유럽증권거래소 통합이라는 방법으로 유럽대륙과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시장규모면에서 영국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유럽증시들과 손을 잡은 것은 런던증시의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난해에는 런던거래소 상장업체 중 첨단기술기업만을 따로 떼어내 테크마크(TECHMARK)라는 새로운 거래소도 선보였다. 인터넷혁명의 바람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새로운 첨단벤처기업들을 미 나스닥이나 유럽의 다른 신흥증시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런던증권거래소의 국제사업단 제인 추 부장은 『최근 투자자들이 기업규모와 해당분야보다 어떤 속성을 가졌는지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며 『기술적인 혁신이 테크마크 대상기업 선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99년 11월 현재 테크마크에는 프리서브, 발티모어 테크놀로지, 보다폰 에어터치 등 컴퓨터, 인터넷, 반도체, 통신장비업체 180여개가 등록돼 있다.
FTSE인터내셔널사는 지난해 10월 테크마크 등록업체 중 중소형기업만을 따로 분류해 FTSE테크마크100지수라는 새로운 주가지수도 개발했다. 이 지수는 보다폰 등 대기업을 제외하고 신생 첨단기업만으로 구성돼 투자자들이 미래의 첨단기술 예비스타들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런던증권거래소의 스티브 레빈슨씨는 『투자자들은 세계적인 기술혁식을 리드하고 있는 역동적인 기업에 열광하고 있다』며 신기술 기업에 대한 증권 투자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고성장 첨단기술기업들은 대부분 런던증시 상장에 필요한 상장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런던증권거래소는 3년간 회계자료가 없는 고성장 첨단기업에 대해 예외규정을 두고 전문가협의회(PANAL OF SPECIALIST)에서 따로 조건심사를 하는 등 문호를 확대하고 있다. 제인 추 부장은 『투자자 보호와 테크마크의 신뢰도 유지를 위해 최소 자본금 5,000만파운드이상, 시장에서 거래(FLOATING)되는 주식 2,000만파운드이상인 기업으로 제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또 기업공시를 강화하고 분기별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등 사후 관리는 보다 철저하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찰스슈왑, E트레이드 등 인터넷 증권사들이 지난해 잇따라 유럽에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연말에는 미 나스닥이 런던에 나스닥유럽을 설립, 미-일-유럽을 잇는 세계증시통합을 구상하고 있다.
또 골드만 삭스, 모건스탠리, J.P.모건, 메릴린치 등 미 4개 투자은행이 스위스 UBS은행과 공동으로 올해중 유럽에 독자적인 전자거래증권거래소의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나아가 뉴욕증시는 거래시간을 연장해 런던증권거래소와 본격적인 경쟁을 벌일 차비를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사이버거래, 데이트레이딩, 개인투자 열풍 같은 이야기가 아직은 바다 건너 먼나라 이야기로 들린다. 주식투자자 가운데 개인의 비중이 전체의 20%에도 못미치는 상황에서 거래수수료를 무기로 한 미 사이버증권사 진출을 그다지 위협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뉴욕증시의 거래시간 연장에 대해서도 충분한 유동성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주가 불안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실제 효과면에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런던증시는 올해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투자자들이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 나스닥 상장기업 주식을 런던에서도 손쉽게 살 수 있게 된다.
「미국 나스닥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고 유럽시장도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는 유럽증시 관계자의 자신감이 새로운 현실 앞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지 주목된다.
런던=이형주기자LHJ30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