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식품 한류 세계 음식지도 바꾼다] <4·끝> 정공법으로 승부한 미주대륙

트렌드 민감한 美 핵심상권 공략 … 할리우드 스타도 찾는 맛집으로

비비고 LA웨스트우드·비벌리힐스에 1·2호점 한인타운 거치지 않고 직접 메인시장 파고들어

동원 美 '스타키스트' 인수로 글로벌기업 각인 브라질 진출한 BBQ, 중남미 전체로 영역 확장



이달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인근 대형 유통업체 '앨버슨'의 냉동식품 코너에서 열린 시식행사에서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를 처음 맛본 주부 케이티 마틴(38)씨는 "10대인 딸이 K팝을 좋아해 한국 문화와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시식을 해보니 기존에 접해본 중국 만두 '링링'과 달리 속이 꽉 차고 겉이 부드러워 CJ제일제당의 '실란트로(Cilantro) 만두'를 5개 구입했다"고 말했다. 마틴씨처럼 비비고 만두를 먹는 미국인들이 늘면서 지난해 미국에서 이 제품은 8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판매개수로 단순 환산하면 약 6,000만명이 먹을 수 있는 양으로 전체 미국 인구(3억1,700만명) 5명 중 1명이 비비고 만두를 접해봤다는 계산이 나온다.

CJ제일제당은 만두 종주국인 중국식 만두와 차별화된 '한국식 만두'로 약 4,700억원 규모의 미국 만두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만두가 육류·채소 등의 재료를 밀가루로 만든 외피로 싸먹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유럽의 '라비올리', 중국의 '빠오즈', 일본의 '교자', 중남미권의 '토르티야' 등 세계적으로 유사한 형태의 음식이 많아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기 쉬운 음식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미국 만두 시장에서는 중국식 '링링'이 30%의 점유율로 1위이며 비비고 만두가 17%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딤섬 종류만 수백여가지이고 만두피가 두꺼운 중국 만두와 달리 한국 비비고 만두는 속이 비칠 정도로 피가 얇고 야채를 풍부하게 넣으면서 무첨가 콘셉트를 강조한 덕에 '웰빙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얇은 만두피의 경우 만두소의 수분을 일정 수준으로 제어하는 기술 등 경쟁 브랜드에서 찾아보기 힘든 CJ만의 식품기술이 집약됐다. 김태준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문장은 "한 카테고리에 한 개 브랜드만 입점시키는 원칙을 고수하는 코스트코를 상대로 우리 만두가 건강식을 추구하는 미국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더 적합하다고 설득해 입점시키는 데 성공했다"며 "현재 미주 지역 코스트코 535개 중 비비고 만두를 취급하는 매장은 총 380여곳으로 코스트코에서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80% 신장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달 초 미국 LA 인근 플러턴 만두 공장이 완공됨에 따라 CJ제일제당은 기존의 2배인 총 3만톤을 생산할 수 있게 돼 미국 내 만두 생산량 1위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CJ제일제당의 경우처럼 아메리카 대륙을 공략하는 한국 식품·외식기업들은 '정공법'을 택하고 있다. 한인타운을 거점으로 삼아 메인 시장으로 가는 우회전략을 쓰지 않고 직접 주류 시장으로 진출하는 식이다. 오피니언리더나 주소비층을 대상으로 한식 경험치를 늘린 후 자연스럽게 그들의 식문화 속에 한식이 자리잡게 되면 전세계인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파고들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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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푸드빌의 비비고 미국 사우스 비벌리힐스점은 지난 2012년 6월 영화 '레미제라블'의 '팡틴느' 역을 맡은 할리우드 여배우 앤 해서웨이가 철저한 체중조절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비비고 매장을 찾은 것이 현지 연예 뉴스에 보도돼 순식간에 '글로벌 스타의 맛집'으로 주목 받았다. 비비고는 진출 초기부터 기존 한식당들의 주무대였던 한인 타운 위주가 아니라 미국 1호점 LA 웨스트우드점, 2호점 비벌리힐스점, 3호점 센트리시티몰점 등 현지인들의 핵심 상권을 파고들었다. 안헌수 CJ푸드빌 글로벌팀장은 "전세계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한식 세계화를 이뤄내려면 현지 환경과 기호를 최대한 반영해 정면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학교·오피스 상권에 진출하고 현지 고객을 위해 계란 토핑과 브로콜리 등의 메뉴를 개발해 할리우드 스타들도 즐겨 찾는 레스토랑이 됐다"고 설명했다.

코리안 스탠더드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다는 '코벌라이제이션(Ko-balization)'을 주창한 BBQ도 마찬가지 사례다. 2012년 10월 브라질 상파울루점을 낸 BBQ는 한국형 치킨을 표방하는 BBQ 고유의 맛과 '선주문 후조리'를 내세운 깨끗한 콘셉트를 그대로 유지했다. 현지 식문화를 분석해 단맛과 매운맛을 20% 줄인 파우더 소스를 개발하는 등 메뉴 개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우수한 맛과 품질을 보증하고 거리상의 수급 불안정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조리 생산시설을 만들어 물류 공급이 원활하도록 했다. 윤홍근 제너시스그룹 회장은 "중남미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한 브라질을 시작으로 아르헨티나·칠레 등에도 진출할 것"이라며 "브라질에서만 올해 안에 50개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칠레 남쪽 끝 마젤란해협에 있는 인구 12만 도시인 푼타아레나스에는 한국 교민이 운영하는 '신라면' 분식점이 있다. 정식 간판도 없이 신라면 포스터 몇 장이 외벽에 붙여져 있을 뿐인데도 이곳 관광객들에게는 '신라면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누구도 홍보한 적이 없지만 한국 정통 라면의 중독성 강한 맛으로 현지인들을 사로잡아 언제부터인가 명소로 떠올랐다. 이곳이 남극으로 가는 길목인 만큼 남극을 오가는 산악인들은 꼭 한번 들렀다 가는 곳이다. 손님의 80%가 현지인으로 식당 벽과 천장에는 라면을 먹고 남기고 간 메시지들로 가득차 있다.

동원그룹은 2008년 6월 세계 최대 참치캔 브랜드 미국의 '스타키스트'를 인수합병(M&A)하면서 미국 현지 시장을 접수했다. 스타키스트는 미국과 남미 시장의 180개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는 등 탄탄한 현지 유통망을 다져놓았으며 내수 시장인 미국 외 에콰도르 등에 참치캔을 수출하는 회사로 동원그룹을 글로벌 참치 전문 기업으로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인수 당시 스타키스트 참치캔 공장은 비효율적인 공정 라인으로 노동손실이 많은 상태였으나 오랜 사업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효율적으로 개선했다"며 "그 결과 현재 생산성이 10% 이상 상승했고 미국 내 참치캔 시장 점유율도 인수 당시 35%에서 최근 41%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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