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지음,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우리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국민들의 과소비'를 즐겨 질책하는데, 이는 무식의 소치다.
경제학자가 과소비를 입에 올린다면 얼간이거나 혁명적 발상의 소유자일 것이다.
개인의 소비는 어디까지나 '합리적 선택'일 뿐이므로, 이를 부정한다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 사회에서 반체제 행위로 간주해 마땅하다."
시사평론가 유시민이 오랜만에 경제학 책을 냈다. 그의 대표작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이후 10년만이다.
이번 책의 이름은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마치 카페에서 한담을 나누듯 딱딱한 경제학을 편안하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내부장식을 꾸몄다.
그는 이번에도 전작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과 마찬가지로 진실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모순투성이인 경제 통념들을 시원하게 까뒤집어 보여준다.
앞처럼 과소비를 질책하는 행위를 '반체제'로 몰아붙인 게 그 일례다. 이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경제학의 논리는 근본적으로 윤리도덕이 개입할 여지가 없으므로 과소비를 비도덕적인 행위로 몰아세우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저자의 진심은 맹목적 쾌락만을 경제적 행위의 지표로 삼는 경제학에 대한 반어법적 공격이었을 것이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 들어서면 독자들은 카페의 다양한 메뉴를 통해 경제학과 경제현상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주안점은 경제에 대한 정보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경제학적 사고방식'과 '경제를 바라보는 눈'이다.
"모든 경제학적 개념과 이론에는 나름의 철학적ㆍ사회적 배경이 있다"는 평소 지론이 책 속에 속속들이 녹아있다.
저자는 우선 경제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한다. 그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모든 경제는 계획경제"라고 잘라 말한다.
아무도 '계획'을 세우지 않는 국민경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자본주의가 분권적인 계획경제라면, 몰락한 사회주의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였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1989년을 전후로 벌어진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의 연쇄붕괴는 '계획경제' 일반이 아니라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의 종말을 의미하게 된다. 유시민의 관점이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열린 사고'를 강조하는 주장으로 주목할 만하다.
국민총생산과 국민복지의 상관관계에 대한 분석도 날카롭다. 저자는 자동차산업의 발전으로 자동차 생산이 늘고 휘발유 판매량도 늘고 세탁소와 병원의 매출도 늘어 국민총생산도 자꾸 올라가지만, 환경오염에 따른 삶의 질의 저하는 분명 복지수준의 후퇴라고 주장한다.
또한 박정희 정권 이후 개발 일변도의 경제정책의 손익계산을 따진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쿠데타를 저질렀던 1972년 한국의 대외수출은 16억달러 1인당 GNP는 396달러였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95년 수출 1,000억 달러, 1인당 GNP 1만 달러가 됐다. 가위 '한강의 기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강은 썩었고, 공기는 더럽혀졌고, 나무는 베어졌고, 산은 깎였고, 개펄과 습지는 메워졌고, 수많은 동식물이 멸종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1995년에 손에 넣은 1인당 GNP는 1972년보다 약 1만 달러가 많았다. 그 동안에 훼손되고 사라진 모든 것들에 우리들 개개인이 부여하는 가치를 거기서 제한다면 과연 얼마가 남을까?"라고 묻는다.
또한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모조리 없어지게 될 전라북도 해안 개펄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영종도에 국제공항이 새로 들어섬으로써 없어져 버린 철새 둥지의 가치는 얼마일까? 등의 물음이 꼬리를 문다.
문성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