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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달러 강세로 주요 신흥국의 증시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가별로는 한국·대만·인도네시아 등 최근 들어 환율 변동폭이 크거나 기업실적이 부진한 국가에 외국인의 순매도가 집중되고 있다. 반면 같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 중인 인도와 그동안 자금유입 규모가 크지 않았던 태국은 외국인의 순매수가 지속되는 등 신흥국 증시 간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국제자금이 달러화 강세와 미국의 경기전망 개선 영향 등으로 위험자산(신흥국 )에서 안전자산(미국)으로 다시 방향을 틀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환율 변동폭이 크고 기업실적이 부진한 신흥국을 중심으로 외국인의 자금 이탈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흥국 증시는 이달 말 양적완화 종료를 앞두고 당분간 조정 흐름을 이어가면서 국가 간 차별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달러화 강세로 신흥국 통화가치가 절하되면서 신흥국 주식시장으로의 자금유입이 크게 둔화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와 대신증권에 따르면 신흥국 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9월 둘째주까지 14억400만달러로 순유입을 유지했지만 셋째주부터 241억원 순유출로 돌아섰다. 이어 9월 넷째주에는 순유출 폭이 13억400만달러까지 늘어났다. 지난달부터 신훙국 시장에서 자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한 외국인은 특히 한국·대만·인도네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 순매도를 집중했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9월 이후 주요 신흥국 시장의 외국인 누적 순매도 규모를 살펴보면 대만이 2,04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893억원)과 인도네시아(647억), 베트남(35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브라질은 같은 기간 1,887억원의 외국인 자금이 들어왔고 인도와 태국에도 각각 903억원, 708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달러화 강세로 신흥국 증시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가운데서도 외국인 자금 유입은 국가별로 차별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얘기다.
오온수 현대증권 글로벌자산전략팀장은 "달러화가 강세였을 때 경험적으로 보면 신흥국 증시가 약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한국은 그동안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원화 강세 국면이었지만 지난달부터 환율이 방향을 급격하게 틀면서 외국인 자금 유출 속도가 다른 신흥국 가운데서도 매우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외국인이 아시아 증시에서 순매도를 집중한 세 나라는 모두 다른 국가에 비해 통화 절하폭이 매우 컸다. 반면 펀더멘털 등의 측면에서 재평가가 진행되고 있는 인도와 자금유입 규모가 크지 않았던 태국에서는 외국인의 자금이 계속 유입됐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다른 신흥국에 비해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더 큰 충격을 받는 것은 우리는 달러 강세에 따른 영향이 한꺼번에 쏟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9월 초만 하더라도 원·달러 환율은 1,020원 아래 머물렀다. 하지만 이후 추세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지난달 16~17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회의(FOMC) 이후에 수직 상승했다. 원·달러 환율은 17일 1,034.90원에서 이날은 1,061.40원으로 마감해 2.6%나 올랐다. 이 센터장은 "원화 가치가 갑자기 돌아선 배경은 지난 8월부터 수출이 잘되지 않으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줄었고 이로 인해 달러 공급이 줄어든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달러 강세 요인은 똑같은데 펀더멘털에 대한 기대감의 차이 때문에 신흥국 별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다르게 나타난다"며 "인도 같은 경우는 모디노믹스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에 외국인의 매수세가 지속되고 있는 반면 터키 같은 경우는 큰 충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10월 말로 예정된 FOMC 이후에도 신흥국에서의 자금유출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9월 만큼의 큰 충격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센터장은 "그동안 달러 강세가 이어질 수 있는 요인들이 많았고 실제 강세가 상당히 지속돼왔기 때문에 10월 FOMC 이후에는 최근처럼 크게 시장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연구원도 "지난해 5월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발언, 올해 1월 양적완화(QE) 축소, 9월 FOMC에서의 양적완화 종료 발언까지 최소 3차례 이상 시장에 충격을 줬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의 변동폭도 줄어들고 있다"며 "10월 FOMC에서 QE가 종료되더라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