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상재 잔디학회 회장, "잔디 관리가 코스의 수준을 결정한다"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코스 경관의 미적 가치는 물론 샷 감각을 결정지으며 경기에도 영향을 미치는 잔디는 코스의 관리 상태를 평가하는 데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오는 9월과 10월에 발표될 서울경제 골프매거진의 ‘한국 10대 퍼블릭 & 뉴 코스’ 선정에서도 코스의 잔디 관리 상태는 중요한 배점 요소가 될 것이다. 잔디 연구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한국잔디학회의 이상재 회장을 만나 코스의 가치를 결정하는 잔디에 관한 모든 것을 들어봤다. 골프장에 가보면 클럽하우스 같은 화려한 시설물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는 중요한 요소가 잔디이다. 잔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은 많지만 잔디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문데 골프라는 스포츠에서 잔디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인가. -골프라는 건물을 짓는다면 잔디는 주춧돌이라 표현할 수 있다. 골프는 기본적으로 자연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스포츠이다. 골프장은 일반 산림처럼 동식물들이 살아 숨쉬는 하나의 생태계인 것이다. 잔디는 이 생태계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생명체로 보아야 한다. 또한 골프장에서 경기 행위가 이뤄지는 곳은 바로 잔디 위이다. 실력 있는 골퍼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잔디의 질에 따라 플레이 수준이 달라질 수도 있다. 최적의 상태로 관리된 잔디 위에서의 플레이는 경기의 감각을 살려주고, 심미적인 만족감까지 준다. 골프장을 구성하고 골프의 감각을 제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잔디가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코스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인 만큼 잔디의 수준에도 평가의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좋은 잔디의 기준은 무엇인가. -골퍼에게 좋은 잔디는 기본적으로 골프를 즐기기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골프를 위한 잔디인 만큼 플레이를 돕고 샷의 감각을 살려준다면 좋은 잔디일 것이다. 여기에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 갖춘다면 더욱 좋다고 생각한다. 골프가 자연을 즐기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줄 수 있는 잔디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골프장의 환경훼손 문제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잔디 관리에서도 환경보호를 위한 배려가 중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환경적으로 좋은 코스가 되기 위한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잔디는 생명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관리 측면에서 잔디를 보기 좋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골프장 안과 밖의 생태계를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관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비료와 농약을 사용해야 한다면 최대한 적게 쓰고, 토양이나 용수에 잔류되지 않도록 이를 잘 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생물 농약 등을 이용한 유기농 잔디 관리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잔디를 깎을 때 나오는 부스러기인 예지물을 이용해 퇴비로 활용하는 것도 친환경적인 골프장을 만드는 데 유용하다. 워터해저드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인공적인 시설물을 갖추는 대신 억새나 갈대를 심어 자연 정화기능을 높여주는 것도 좋다. 이렇게 환경을 보호하려는 다양한 방법과 노력이 친환경적인 코스를 만들고, 좋은 코스의 밑바탕이 된다고 본다. 본지에서 진행하는 ‘한국 10대 퍼블릭 & 뉴 코스’ 선정 기준에도 코스관리 상태는 배점이 높은 평가항목으로 올라 있다. 앞서 설명한 좋은 잔디 관리의 조건과 친환경적인 관리를 포함해 좋은 코스 관리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면. -코스 평가의 기준을 잔디나 친환경적 요인에 국한해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코스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골프장 경영자는 물론 골퍼들도 잔디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잔디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좋은 상태의 코스를 유지하고 이용할 수 있다. 코스관리자는 설계와 시공의 바탕도 중요하지만 관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좋은 코스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골프를 즐기기 위한 최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잔디 관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좋은 생육상태를 유지하며 플레이를 위해 최적의 상태로 가꾸어진 잔디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잔디를 비롯한 전체적인 코스 관리가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골프장의 전체적인 관리의 수준을 평가한다면. -내장객의 수요가 공급보다 월등히 많은 상황에서 잔디 관리의 중요성이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코스의 질이 좀 떨어져도 기능만 작동한다면 영업에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관리를 소홀히 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코스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관리 부분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전국에 골프장이 부쩍 늘어나며 경쟁구도로 접어들었고 관리를 소홀히 하는 골프장은 도태되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골프장들도 이러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전에 비해 관리에 좀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 같다.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뜻인가. 잔디 관리 부분에서 우리나라 골프장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많은 골프장의 경영자들이 잔디의 관리보다 영업이익의 보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영업이익을 위해 잔디 관리를 희생시키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라이트 시설이다. 언뜻 야간에도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잔디는 생명체라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잔디도 밤에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 하지만 야간 라운드를 통해 잔디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은 정상적인 잔디의 생육에 걸림돌이 된다. 야간에 불빛을 보고 주변의 곤충들이 몰려드는 것도 생태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자연환경을 배려하지 않는 골프장은 절대 최고의 코스로 꼽힐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발생하는 생태적 문제점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했다는 뜻인데 이를 지적할 수 있는 잔디 전문가들의 전문성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우리나라 코스 관리자의 수준은 세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인가. -이미 오래 전부터 골프가 보편화된 나라보다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 관리에 대한 인식 자체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골퍼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관리자의 수준 역시 높아지고 있다. 잔디 관리 역시도 점차 전문화되어 가고 있으며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이전에 비해 그린키퍼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전문지식을 가진 유능한 그린키퍼들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 기대한다. 미국의 경우 그린키퍼가 당일 코스의 개장 여부를 결정할 만큼 잔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골프라는 운동을 최상의 상태에서 즐기기 위한 잔디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잔디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린키퍼의 역할일 듯하다. 그간 전문가의 부재가 지적됐는데 전문 지식을 배울만한 그린키퍼 양성 교육기관이나 과정이 존재하는가. -현재 건국대에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잔디관리전문가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나도 이 과정에 출강을 하고 있으며 잔디와 관련된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강의를 맡고 있다. 당분간 골프장 건설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고, 기존 코스들 역시 잔디 관리의 전문가를 초빙해 코스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향후 이런 양성과정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현장에서의 관리 수준도 점차 높아질 것이다. 경험에 의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던 잔디 관리 행태에서 벗어나 정량화, 과학화된 관리 기법이 도입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자리를 잡는다면 우리나라의 코스 수준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골퍼의 입장에서 어떤 잔디를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잔디의 품종에 따라 특성이 다르고 공략법도 이에 맞게 구사해야 할 것 같은데. -우선 기본적으로 잔디의 종류를 알아야 한다. 많은 코스의 페어웨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잔디는 한국형 들잔디인 중지이다. 잎이 질기고 뻣뻣하며, 성글게 자라 단위면적 당 밀도가 낮은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임팩트 시 클럽에 잔디가 걸리는 저항이 적은 대신 볼에 스핀을 주기는 어렵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양잔디 코스는 대부분 한지형 잔디인 켄터키블루로 조성된다. 4계절 푸른빛을 띠며 기온이 낮은 시기에도 생육이 진행돼 우리 기후에도 잘 맞는다. 잎이 가늘고 부드러우며, 단위면적 당 밀도가 높은 특징을 보인다. 잎이 가늘고 부드러운 만큼 임팩트에서 큰 저항을 일으켜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동남아를 비롯해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난지형 잔디가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버뮤다그라스 같은 품종이 대표적인데 난지형 잔디의 특성상 기온이 따뜻한 제주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생육에 어려움이 있다. 버뮤다그라스의 경우 잎에 수많은 작은 털이 있어 쓸어치는 샷에서는 클럽을 잡아버리는 특성이 있다. 이는 타이거 우즈도 힘들어한다고 들었다. 일반적으로 그린에 주로 쓰이는 벤트그라스를 페어웨이 전체에 심는 경우도 있다. 유지·관리 측면에서는 어려움이 있지만 고급화·차별화를 추구하는 골프장을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다. 벤트그라스는 카펫처럼 곱고 섬세한 잎이 빈틈없이 자라는 특성을 보인다. 따라서 그 위를 걷는 골퍼에게는 푹신한 감각을 주고, 아이언이나 우드로 공략하는 페어웨이샷에도 좋다. 이렇게 잔디의 종류와 특성을 감안하고, 자신의 샷을 상황에 맞게 수정해가며 플레이 한다면 골프의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골퍼들은 연중 6개월은 누런빛을 띠는 중지에 비해 사계절 푸른 켄터키블루와 같은 양잔디를 선호한다. 사계절 푸르기 때문에 보기에도 좋고 샷의 감각도 뛰어나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그런가. -샷의 감각에 있어서는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품종별로 장단점이 있는 것이지 우열의 차이를 나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품종별로 나타나는 특징에 따라 계절별로 샷의 차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중지의 경우 1년 중 6개월가량 휴면기를 가진다. 휴면기에는 생육이 정지되고 잎이 누런빛을 띤다. 이 시기에는 잎이 더 뻣뻣해 볼이 잔디 위에 떠있는 상태로 놓이게 된다. 당연히 푸른 잔디와는 다른 특성을 보이고 샷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관리적인 측면에서는 중지에 비해 양잔디가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10대 코스 선정에서도 잔디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는 골퍼들은 잔디의 상태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어렵다. 전문가의 시각으로 좋은 잔디를 평가하는 포인트를 소개한다면. -잔디 전문가의 시각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골프에 적합한 잔디 상태를 알고 있다. 페어웨이에 디봇이 잘 수리되어 있고, 그린은 알맞은 길이로 예초가 돼 원하는 퍼팅이 이뤄지는 코스가 잘 관리된 코스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잔디는 생명체이므로 애정과 관심으로 관리한 코스라면 스스로 건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아름답고 건강한 잔디 위에서 하얀 볼을 날릴 수 있는 코스라면 잔디 관리를 잘 한 코스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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