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참여정부의 그늘

양극화 해소를 절체절명의 사명으로 여겼던 참여정부 말, ‘부처 비대화’의 구설 속에서 또 하나의 양극화 문제 관련 조직이 신설됐다. 기획예산처에 설치된 양극화ㆍ민생대책본부다. 기존의 청와대 산하 빈부격차ㆍ차별시정위원회와 사람입국ㆍ일자리위원회 사무국, 그리고 사회서비스향상기획단 등 3개 조직을 결합해 중립적인 입장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 개발과 집행을 담당토록 한다는 것이 당초 취지였다. 여론은 좋지 않았다. 부처 내부에서도 기획처가 민생까지 관할할 필요가 있냐는 반대 의견이 많았고 신설 본부에 대한 기획처 자체의 기대나 열의도 뜨뜻미지근했다. 그럼에도 본부가 신설된 데는 노무현 대통령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8개월. 지금 양극화ㆍ민생대책본부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잘못된 태생부터 예고됐듯이 정부조직 통폐합의 큰 그림에 낄 곳이 없어진 것이다. 다른 본부처럼 재정경제부와 합쳐져 기획재정부에 편입되기에는 맡은 업무가 이질적이고 각 부처와 중복되는 업무도 너무 많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본부 업무를 대폭 줄여 보건복지여성부로 이관하는 안을 내놓았지만 새 조직에서 군식구가 될 것은 너무도 뻔하다. 이미 33명의 본부 인력은 갈 곳이 애매해졌다. 기획처는 본부 인력을 최대한 기획재정부가 끌어안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통합 상대인 보건복지부와 재경부는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획처의 한 관계자는 “재경부는 기획재정부로 흡수되는 기획처 인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복지부로 최대한 내보내야 한다는 입장이고 복지부에서는 어차피 보건복지여성부에서 기획처 직원들의 설 곳이 없으니 자연스레 인원 조정이 될 것이라는 심산”이라고 전한다. 무엇보다 시장주의와 성장지향을 내세우는 새 정부에서 ‘양극화 해소’라는 테마가 사실상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면서 양극화ㆍ민생대책이라는 본부의 존립기반이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본부의 한 관계자는 “요즘은 사람들이 측은하게 생각할까봐 술도 잘 안 마신다”며 “(심청 이야기에 나오는) 인당수에 빠지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참여정부 양극화ㆍ민생대책본부는 분배와 양극화 해소에 ‘올인’한 참여정부가 남긴 또 하나의 그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민생 대책과 양극화 해소가 국정 운영에서 중요한 가치임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양극화ㆍ민생대책본부의 침통한 운명이 새 정부의 양극화 해소와 민생대책의 운명은 아니기를 바란다.

관련기사



신경립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