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자생력 배양만이 살길(위기의 은행)

◎“외압 사절” 대쪽경영 절실/대출비리 관련은행들 재무상태 최악/인사독립 등 선행돼야 홀로서기 정착『지난해 11월 일본 한와(판화)은행이 부실채권 과다보유를 이유로 대장성으로부터 업무정지 명령을 받아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우리가 최상의 지표로 삼아온 「부실없는 은행의 건설」방침이 옳았으며 이제 다시 무너지면 예전과 같은 재기의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상업은행 정지태 행장의 말이다. 상업은행은 80년대초 이철희·장영자사건, 명성사건 등에 휘말린데 이어 90년대 초에는 또 다시 가짜 CD사건, 한양부도사건 등으로 은행이 존폐기로에까지 몰리는 위기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그 후 전 직원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재기에 성공, 금년도에는 선발 시중은행중 당기순이익 1위가 확실시 되고 있다. 상업은행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93년 한양부도 이후에도 수없이 터진 각종 대형업체의 부도에 거의 휘말리지 않았기 때문. 유원건설, 건영, 우성, 한보 등 각종 대형 부도사태에 상업은행은 거의 관련되지 않았다. 반면 제일, 서울은행의 상황은 이와 정반대이다. 제일은행은 94년까지만 해도 선발 시중은행중 자타가 공인하는 부동의 1위 은행. 그러나 95년 유원건설, 96년 우성건설, 97년 한보철강등 건당 수천억원을 넘는 부도금액을 기록한 대형 거래업체들이 잇따라 부도를 냄에 따라 이제는 깊은 수렁에 내 몰리고 있다. 서울은행 역시 유사한 상황. 서주, 라이프, 덕산, 건영 등 거래 대기업의 잇딴 부도는 국내 금융기관 역사상 최대의 당기적자(1천6백68억원 적자)로 만들었다. 밖으로 눈을 돌려보자. 미국, 독일, 영국등의 상위은행과 비교한 국내 상위은행들은 자본금, 자산, 세전 순이익 규모등에서 하늘과 땅만큼의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내은행들은 98년부터 바로 이러한 선진국 은행들과 국내시장에서 맞붙어야 한다. 당장 올해부터 외국은행의 국내은행 지분참여가 허용되고 98년 12월부터는 외국인이 전액출자한 현지법인의 설립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례는 국내 금융기관들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부터 경쟁력을 찾아야 하는지를 명약관화하게 보여 준다. 한국은행 부총재출신으로 위기의 제일은행을 맡은 유시열 제일은행장은 취임 제1성으로 『어떠한 외압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은행 관계자들은 바로 이처럼 「거부할 수 있는 자세」가 국내은행 자생력 확보의 제1 관건이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물론 은행장 인사권을 사실상 정부나 정치권이 쥐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같은 거부자세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한보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국내 금융규제의 역사는 현재 과도기를 맞고 있다. 한보부도는 정부에서 결정했지만 그 짐은 결국 은행들이 지고 있다. 과거처럼 「규제」도 하지만 「보호」도 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OECD가입등은 바로 이러한 보호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뒷감당을 할 수 없는 정부 간섭」에 대한 「적극적인 거부」가 필요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은행장이 많아지는 풍토의 조성, 바로 국내은행 자생력 확보의 첩경이다.<안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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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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