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월 14일] <1594> '사람 속으로'


1967년 1월1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공원. 오후로 접어들면서 인디언 전통복장이나 면포에 동양식 천연물감으로 날염한 옷을 입은 젊은이 3만여명이 모여 시를 읊고 명상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행사의 이름은 '휴먼 비인(Human Be-In)'.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사람 속으로'라는 뜻을 가진 행사는 왜 열렸을까. 거부와 저항을 위해서다. 희망으로 시작한 1960년대가 케네디 형제의 암살과 베트남전 확전, 징집으로 얼룩지자 젊은이들은 인간성 회복을 부르짖으며 기존의 권위를 조롱하고 나섰다. '사람 속으로' 행사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1967년 여름 내내 미국 서부를 달궜던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이라는 반(反)문화(counterculture) 행사로 이어지며 반전(反戰)과 개인의 자유, 대학 민주화, 남녀 평등, 흑인 민권 향상 같은 다양한 의제를 쏟아냈다. 젊은이들이 포크송을 거쳐 록음악에 열광한 것도 이 시기다. 유럽에 퍼진 반문화운동은 학생이 대학 행정에 참여하는 대학 개혁으로 나타났다. '사람 속으로' 행사를 히피 문화의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저항은 억압을 불렀다. 기성세대는 반문화운동을 '배 부른 젊은이들의 얼빠진 행동'으로 치부해버렸다. 한국에서 특히 그랬다. '무분별한 방종을 좌시할 수 없다'는 권력의 의지에 따라 경찰이 가위로 긴 머리를 자르고 여성의 치마길이를 재는 촌극이 벌어졌다. 젊은이들의 저항은 과거형일까. 그렇지 않다. '60년대 청년'들이 풍요 속에서 시대와 인간의 내면을 고민했다면 오늘날 청춘들은 일자리 얻기에 머리를 싸맨다. 노인이 된 '60년대 청년'들을 부양해야 할 짐도 지고 있다. 의문이 든다. 세상은 과연 나아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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