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인력수급 틀 다시 짜자] (1)고착화되는 청년 고실업

2001년 2월 지방 국립대학을 졸업한 이모(26ㆍ여)씨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취업의 문턱을 넘는 것은 이씨의 생각보다는 훨씬 어려웠다. 그는 2년여 구직기간 동안 100여차례에 걸쳐 대기업에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합격을 통보한 회사는 하나도 없었다. 이씨는 대기업 입사를 포기하고 최근에는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 씨처럼 경제활동을 시작할 나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 실업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올 4월말 현재 청년실업률은 7.3%로 전체 평균 실업률(3.3%)의 두 배가 넘는다. 여기에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정규직 취업자와 일자리 구하기를 포기한 실망실업자를 합치면 실제 청년실업률은 10%를 웃돌고 있다. 청년 10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실업자인 셈이다. 특히 청년실업자 가운데 대졸 이상 고학력자 비중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전체 실업자 중 고졸이하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전문대를 포함한 대졸 이상 고학력자들의 비율은 지난 98년 25.6%에서 2000년 30.1%, 2001년 32.7%, 2002년 36.1%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대학 졸업장이 `백수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처럼 취업이 어려워지자 고학력자들은 눈높이를 낮추어 하향지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생산기술직과 단순 사무보조원은 물론이고 환경미화원 모집에도 대졸자들이 몰리고 있다. `일단 취업부터 하고 보자`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전공이나 적성과 무관한 직업을 갖는 근로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은 취업의 좁은 문을 뚫기 위해 대학을 졸업한 뒤에 전문대나 직업전문학교에 다시 진학하거나 학원 등에서 별도로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학교를 휴학하고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거나 학점을 높이기 위해 졸업을 연기하는 경우도 많다. 조금이라도 취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도 취업의 문턱을 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이들 가운데는 일자리를 찾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인생역전을 꿈꾸며 사법고시 등에 승부를 거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청년실업률이 이처럼 높은 것은 인력수급의 불일치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청년층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반면 대학졸업자는 1983년 16만7,000명에서 2002년 55만2,000명으로 20년 동안에 무려 3.3배로 늘어났다.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사람구실을 제대로 못한다`는 그릇된 인식이 사회전반에 확산되면서 인력수요와는 무관하게 대학졸업장 따기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양산된 고학력자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과는 거리가 멀다는데 있다. 대학교육이 산업과 기술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 정작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고급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력직을 선호하는 쪽으로 기업의 채용패턴이 달라지고 있고 힘든 일을 기피하는 구직자들의 잘못된 근로의식도 청년실업 심화에 한 몫 하고 있다. 정권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기부양 등 단기적인 대책은 일시적으로 실업률을 낮출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않는다”며 “산업수요의 변화에 맞춰 대학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중등교육과정부터 직업교육을 강화하는 등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오철수기자 cso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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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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