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2월 8일] <1615> 영화 '국가의 탄생'


'백인이 흑인을 만나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백인 처녀가 흑인의 겁탈을 피해려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무법 천지에 남군 대령 출신인 벤이 분연히 일어나 머리에 흰 두건을 두른 백인 민병대를 이끌고 까만 악마들을 무찌른다.' 1915년 2월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쿨룬강당에서 개봉된 3시간10분짜리 무성영화 '클란스맨(Clansman)'의 줄거리다. 영화는 과연 진실을 담았을까. 정반대다. 흑인들은 1960년대까지 버스 좌석조차 마음대로 앉지 못했다. 오히려 백인들의 린치에 시달렸다. 현실을 왜곡했음에도 영화는 대성공을 거뒀다. 평균 관람료가 5~10센트였던 시절에 2달러(요즘 가치 42달러)를 받았어도 쿨룬강당의 2,600여석이 모자랐다. 초회 매진은 대성공의 예고편. 개봉 직후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으로 이름을 바꾼 이 영화는 1946년까지 1,800만달러라는 흥행수익을 거뒀다. 당시 평균 제작비 3만달러보다 훨씬 많은 11만2,000달러(요즘 가치 238만 달러)를 투입하는 모험을 걸었던 감독 그리피스는 돈방석에 앉았다. 그리피스는 다음 작품부터 연이은 흥행 실패를 맛봤지만 '국가의 탄생' 하나로 명감독으로 기억되고 있다. 찰리 채플린은 그를 두고 '우리 모두의 스승'라고 평했을 정도다. 영화는 사회적으로도 반향을 일으켰다. '정의 구현'을 위해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가장 덕을 본 집단은 그리피스가 '백인문화를 수호하는 성스러운 십자군'이라고 지칭한 KKK단. 소멸 직전에서 부활해 단원수를 순식간에 800만명으로 늘렸다. 악의적인 왜곡은 희미해지고 KKK단이 세력을 잃었어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 '국가의 탄생'으로 시작된 미국 영화의 세계 지배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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