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민유성 산업은행장

"대우차판매 상거래 채권자들 양보 절실"<br>경영정상화 성공 위해선<br>사업파트너 다시 만들고 새비즈모델도 창출해야<br>그리스發유럽 재정위기<br>한국기업·금융사엔 기회



"대우차판매가 경영정상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야 합니다. 채권단은 송도 부지와 계열사인 우리캐피탈, 건설부문 등을 모두 아울러서 종합적인 워크아웃 플랜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대우차판매 워크아웃 플랜은 금융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 행장은 "무엇보다 상거래 채권자들의 도움과 협력이 절실하다"며 "이해관계자들이 한 발짝씩 물러나서 양보해야 대우차판매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 재정위기 사태는 한국 기업과 금융회사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민 행장은 "우리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겪었을 때 해외투자자들이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며 한국기업들을 사들였다"며 "유럽 사태는 앞으로 3~5년간 한국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유럽기업들을 인수합병(M&A)하거나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산업은행 본사에서 민 행장을 만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 진행상황과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유럽 재정위기에다 천안함 사태로 국내외 금융시장이 상당히 불안합니다. ▦큰 틀에서 보면 거쳐갈 수밖에 없는 과정이라고 이해됩니다.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한 후 금융시장의 충격이 실물경제의 충격으로 전이됐지요. 이 해법으로 선택된 것이 각국의 확장적인 재정운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리스 등 유로존내 취약한 국가에서 재정 리스크가 부각됐습니다. 냉정하게 따지면 그리스 재정위기 자체는 규모면에서 그리 크지 않습니다. 시장에선 그리스 문제가 채무재조정을 거쳐야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지요. 시차가 있겠지만 결국 그렇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2차, 3차 파장인데요. 국채 투자자들의 입장에선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주변국에 대해서도 불안한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천안함 사태도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 높이는 요인 아닙니까. ▦시장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잘 정리될 것이라고 믿고 기대합니다. 천안함 사태의 추이나 파장에 대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외교적 노력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제 개인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유로존 문제로 돌아갈까요. 시장에선 그리스 재정위기가 결국 유로존 붕괴로 가는 것 아니냐고 내다보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그리스발 재정위기는 유로존의 국가단위 리스크를 민간 리스크로 확대 재생산시키면서 상당 기간 불안한 모습을 이어갈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유로존의 해체 또는 유로화 붕괴는 조금 다른 사안이라고 판단됩니다. 아시겠지만 유럽은 오랜 역사 속에서 주변국간의 정치, 군사적 마찰로 많은 고통을 겪었던 경험을 갖고 있지요. 이를 피하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 유럽통합 움직임이었고요. 유로존 또는 유로화 유지를 위해선 경제적으로 회원국의 비용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겠지만 이것이 정치, 군사적 불안감보다는 훨씬 메리트가 크다고 볼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론 마찰음은 나오겠지만 파열되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 비관적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관건은 문제해결의 과정이 길어질 경우 국내에 미칠 영향 아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유럽사태를 두고 국내 경제에는 '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회'입니다. 지난 1997년 한국이 IMF 위기를 겪었을 때 해외투자자들은 기업 인수합병(M&A)이나 법인설립 등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챙겼습니다. 국내 은행에 대한 해외자본 투자도 왕성하게 일어났지요. 우리에게 이 같은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유럽 경제에는 분명히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지만 한국 기업과 금융회사들에게는 좋은 투자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한국 기업들이 유럽에 많이 진출해 있지만 미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진출속도가 느리죠. 유럽에는 한국이 성장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우수한 제조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M&A 및 직접투자 기회가 많다는 것이죠. -상당히 매력적인 시각입니다.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하지만 상당한 모험이 뒤따르지 않을까요. ▦유럽이 재정위기를 겪고 다시 강해지기 전에 유럽시장에 진출해야 합니다. 시스템을 재정비하기 전에 기회가 있는 것이지 정비가 끝나고 나면 기회는 사라질 것입니다. 한국의 제조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장기적인 안목과 시각으로 현재의 유럽사태를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산업은행도 유럽시장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면밀하게 준비를 하고 있지요. 유럽은 물론이고 미국시장에서도 앞으로 2~3년간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우리가 IMF 위기를 겪었을 때 해외투자자들이 5년 가량 바겐세일을 즐기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가 바겐세일을 즐기는 소비자가 되어야 합니다. -국내 구조조정 시장으로 화제를 돌려보죠. 대우차판매 처리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만. ▦대우차판매는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고민해야 합니다.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하고 새로운 사업파트너를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우차판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금융채권단뿐 아니라 상거래 채권자들이 고통을 분담하고 아픔을 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대우차판매는 GM대우와의 결별로 자동차판매 부문이 크게 축소되었고 부동산경기 침체로 건설부문도 어려움을 겪고 있죠. 현금이 없습니다. 자체 빚이 1조원 이상이고, 건설부채도 1조원 이상입니다.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모두 공멸로 빠져들 수 있는 위기상황입니다. -상거래 채권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상거래 채권자들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채권상환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대우차판매는 몇 차례 1차 부도를 맞으면서 위기를 넘기고 있는 형편이죠. 상거래 채권자들이 고통분담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대우차판매는 결국 기업회생절차를 밟게 되고 모두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상거래 채권마저 동결될 수 있고 회수기간도 더욱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대우차판매 회생을 위해 어떠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습니까. ▦송도부지ㆍ건설부문ㆍ계열사인 우리캐피탈 등을 포함해 종합적인 차원에서 워크아웃 플랜을 마련할 것입니다. 전부를 살릴 수도 있고 일부를 살리는 방안이 될 수도 있겠죠. 중요한 것은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주름살을 안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거래 채권자들의 도움과 협조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대우차판매의 비즈니스모델이 확실하면 산은이 신규자금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세밀하게 기업내용실사(Due Diligence)를 진행하고 있는데 금호그룹에 비하면 내용이 복잡하지 않아요. 조만간 실사결과가 나올 것으로 봅니다. -쌍용차 매각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쌍용차는 현재 법정관리하에 있기 때문에 법정관리인이 매각을 포함한 정상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산은도 경과를 지켜보고 있지요. 쌍용차를 인수하겠다는 유력한 주체가 나타난다면 산은은 금융지원도 할 수 있습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조정이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통운 처리방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만. ▦금호석유화학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경영권은 정해진 상태입니다. 금호산업은 채권단이 관리하게 되죠. 금호그룹이 경영정상화에 성공하게 되면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금호그룹 일가에게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도 마찬가지입니다. 금호그룹 오너 일가의 협력과 경영정상화에 대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대한통운의 경우 채권단과 처리방향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채권단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죠. -GM대우의 재무구조개선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GM본사와의 협상은 어떻습니까. ▦국내 은행들은 GM대우 채권 1조4,000억원 가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매달 상환해야 하는 채무가 돌아오고 있는 상황에서 GM측은 대출만기 연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중 2,500억원은 회수됐습니다. 지난 4일에도 7,500억원의 만기가 돌아왔는데 채권단은 한 달간만 연장해주기로 했습니다. GM이 3개월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한 달간으로 축소한 것이죠. 채권단은 대출만기 연장기간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GM측을 압박할 계획입니다. -GM이 좀더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채권단이 GM측에 요구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GM대우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면 채권단은 GM대우에 대해 신규자금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GM은 아직 이렇다 할 발전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채권단은 GM이 GM대우 생산물량을 확보해주고, GM대우의 라이선스를 인정하고, 채권단이 추천하는 공동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선임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GM이 일방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경영권에 일정 부분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채권단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GM이 좀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비전제시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약력 ▲1954년 서울 ▲1973년 경기고 ▲1981년 서강대 경영학과 ▲1986년 미국 뉴욕주립대 경영대 학원(MBA) ▲1987년 씨티은행 뉴욕 기업재무분석 부장 ▲1988년 씨티은행 서울 기업금융그룹 지배인 ▲1990년 자딘플레밍증권 서울사무소 부소장 ▲1991년 리먼브러더스 서울사무소 부소장 ▲1994년 모건 스탠리 서울사무소장 ▲1996년 환은스미스바니증권 대표이사 부사장 ▲1999년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대표이사 사장 ▲2001년 우리금융지주회사 부회장 겸 재무담당 최고임원 ▲2005년 리먼브러더스 서울지점 대표 ▲2008년 한국산업은행 은행장 ▲2009년 산은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 겸 산업은행장
국제금융 베테랑… '구조조정 마에스트로' 평가도



■민유성 행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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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성 산업은행장은 미국 씨티은행 뉴욕 본점 근무를 시작으로 자딘플레밍증권ㆍ리먼브러더스ㆍ모건스탠리 등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면서 포항제철(현 포스코)과 한전 민영화 작업에 참여했다.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인 우리금융지주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재직할 당시에는 주위에서 불가능하다고 했던 부실자산 정리와 국내외 동시 상장을 이뤄내는 뚝심을 보여줬다. 한국 금융산업을 대표하는 '국제금융 베테랑'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산은 민영화에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특유의 끈기와 설득으로 산은법 개정을 이뤄냈다. 또 지난해 10월 정책금융공사 분리와 산은금융지주 출범을 통해 산은 민영화에 주춧돌을 놓기도 했다. 민 행장은 금융위기 속에서 시장안전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기업 구조조정, 사모투자펀드(PEF) 등 시장친화적인 새로운 대안으로 위기극복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직원들에게 "익숙한 오솔길을 버리고 스스로 길이 되기 위해 험한 길을 나서도록 합시다. 개척자로서의 도전정신을 잊지 맙시다"라며 무엇보다 '창조'를 강조한다. 민 행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당면과제로 떠오른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GM대우ㆍ금호아시아나그룹 등 어려운 작업을 원칙과 끈기로 헤쳐나가면서 '구조조정의 마에스트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직원들과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CEO다. 경비원ㆍ청소원을 비롯해 마주치는 누구에게나 환하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지난 2008년 6월 산업은행장에 부임하고 100일 만에 직원 800여명과 식사를 하면서 경영 청사진을 화이트보드에 그려가며 비전을 제시했다. 또 여의도 선상 카페에서 젊은 사원들과 넥타이를 머리에 두르고 대화하면서 민간 출신 CEO에 대한 거부감을 떨쳐버리도록 했다. 그는 상대가 누구이든지 환한 웃음으로 먼저 다가가 경계심을 무너뜨리는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을 비롯한 국제 금융계 거물들과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것도 그의 탁월한 업무수행 능력과 함께 인간미가 배어나는 친화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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