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이끌어내는' 교육 필요하다

몇 해 전 겨울 현직을 떠나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미국 멘토링컨설팅 업계의 권위 있는 M여사를 초청해 10명 정도가 모여 같이 공부모임을 가졌다. 내용도 재미있고 진행도 매끄러워서 유익한 점이 많았다. 일흔을 바라보는 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컴퓨터 환경에 익숙하지 않으셔서 그런지, M여사는 우리가 흔히 쓰는 파워포인트 자료를 쓰질 않고 좀 구식이라 할 수 있는 칠판과 플립차트, 그리고 OHP를 활용하며 진행했다. 빠듯한 일정에 영어로 진행돼 필기를 제대로 못했던 참가자들은 강의자료를 컴퓨터 파일로 받고자 여쭤봤다가 조금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파워포인트 등으로 만들어진 자료는 없고 다만 강의한 OHP 필름의 내용 등을 복사하는 것은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주입식'으론 행동변화 어려워 강의 후 그녀와 대화를 나눠보고 느낀 점은 우리가 참여했던 활동은 ‘강의’ 또는 ‘강좌’가 아니고 ‘워크숍’이었다는 것, M여사는 ‘교사(instructor)’ 또는 ‘강사(lecturer)’ 가 아니고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ㆍ학습촉진자)’였다는 것이었다. 일부 OHP자료의 개념ㆍ지식 내용 말고는 카피할 것도 거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머지는 참가자의 학습을 이끌어내기 위한 학습촉진자의 진행 대화였던 것이다. 공동 참여학습을 뜻하는 ‘워크숍’의 관점에서 보면 파워포인트로 진행하는 강의는 지식을 한쪽 방향으로 전달할 때 많이 쓰는 것이고 칠판이나 플립차트에 참여자들의 느낀 점과 의견 등을 키워드로 옮겨 적으면서 진행하는 방식은 쌍방향 의사소통을 통한 참여학습의 방법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몇 달 후 미국에서 활동하시는 어느 스님의 강의를 서울에서 들은 적이 있다.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계신 분인데 매년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방학캠프를 미국에서 열고 있었다. 그분의 말씀 중에 “우리는 교(敎)는 있는데 육 (育)이 부족하고 학(學)에 치중해 습(習)을 소홀히 해왔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육(育)은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 몸을 기르는 것이고 습(習)은 어린 새가 나는 것을 익히는 뜻이라 한다. 교(敎)와 학(學)이 좌뇌를 통해 지식과 논리를 배우는 것이라면 육(育)과 습(習)은 우뇌를 활용해 몸으로 익히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의 주입식 교육이 암기위주의 지식을 위해서는 좋으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많이 미흡한 듯하다. 주입교육은 지행일치(知行一致)의 목적달성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영어에서 교육의 의미인 ‘education’ 도 라틴어의 ‘educare(이끌어내다)’에서 근원한 것이다.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내는 것이다.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업의 학습책임자들은 지식(knowledge)의 전수보다는 학습 후 현장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스킬 향상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 실제로 기업의 경영자 워크숍을 하며 자주 듣는 부탁이 있다. “우리 회사 경영자들 대부분이 학교 MBA 또는 사내 MBA 과정을 마쳤습니다. 우리가 뭐 지식이 부족해서 못하는 게 있나요. 이번에는 워크숍 후 현장에 돌아가서 직접 적용할 수 있도록 지식전달보다는 스킬 향상 위주로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방적 강의보다는 하면서 배우는 학습(Learning by doing)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해 주십시오.” 다양한 체험학습 적극 활용을 이러한 요구는 이제 학교에서나 기업에서나 학습방법의 근본적 변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학습내용은 가르치는 사람의 공급욕구가 아니라 학습자의 수요욕구(학습니즈)가 충족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하고 지식전달자로서의 강사의 모습이 아닌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가진 학습촉진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역할연기(롤플레잉), 게임, 소그룹 토의, 비디오 피드백 등 다양한 체험학습 방법이 적극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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