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자들은 연구를 위한 대화를 어떤 방식으로 할까. 복잡한 화학식을 그려가며 할까. 합성신약을 연구하는 화학자일 경우에는 그렇다.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새로운 약을 연구하는 유기화학 계열의 화학자들은 복잡한 화학식을 끼고 살아야 한다. 합성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합성신약이란 화학합성으로 만드는 약을 말한다. 합성신약 하나를 만들어내려면 화합물 탐색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무작위로 화합물을 탐색해 약효가 있는 화합물을 찾아내는 경우와 특정 질병에 어떤 화합물이 약효가 있다는 사전 정보를 토대로 찾아내는 경우다. 하지만 어떤 과정이든 복잡한 화학식을 가진 화합물 탐색이 가장 먼저다. 물론 식물 등 천연물로부터 약효성분을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약효성분을 찾아내면 이와 유사한 화합물을 찾아내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천연물로부터 약효성분을 얻는 것보다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편이 훨씬 싼 값에 대량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제공=한국화학연구원 현재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의약품의 85%는 화학적으로 생산된다. 나머지 15%는 주로 주사제로 사용되는 바이오 의약품. 이 같은 추세는 보다 심화돼 오는 2010년에는 90%의 의약품이 화학적으로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는 의약품의 종류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만일 금액을 기준으로 하면 바이오 의약품의 비중이 더 커진다. 이는 바이오 의약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화학자들은 약효성분이 있는 화합물을 찾아내면 각종 시약을 섞고 용해 및 고온ㆍ저온 처리과정 등을 거쳐 유효물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같은 유효물질은 생물학자들에게 넘겨져 세포단위에서 약효가 있는지 검증되며 약물전달 과정도 연구된다. 화학자들은 생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유효물질 가운데 어떤 부분에 약효가 있고, 어떤 부분이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찾아낸다. 약효가 있는 부분은 강화하는 반면 부작용이 있는 부분은 어떻게 떼어낼지 고민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복잡한 화학식 대화가 이뤄진다. 비용 덜들고 대량생산 장점
'천연물서 추출' 보다 효과적 이 과정을 거치면서 유효물질 가운데 선도물질을 찾아내고 생물학자들에게 넘겨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신약개발을 위한 후보물질을 찾아내게 된다. 선도물질이란 후보물질의 전 단계를 의미하는데 약리작용이 우수하고 부작용이 적다고 판단될 경우 후보물질로 등록된다. 후보물질이란 신약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높은 화합물이다. 통상 화합물 수준의 유효물질이 신약개발을 위한 후보물질로 발전되기까지는 5년 정도가 소요된다. 그리고 후보물질은 쥐나 영장류 등의 동물에게 적용하는 전(前) 임상시험과 사람에게 테스트하는 임상단계를 거쳐 안전하면서도 약효가 있다고 확인되면 신약으로 개발된다. 하지만 이렇게 개발된 신약이 곧바로 상품화되는 것은 아니다. 상품화는 제약사들이 경제성 등을 따져가며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신약 하나가 상품화되기 위해서는 유효물질을 찾아내는 단계부터 시작해 12년 정도 소요되고 투자비는 최소 8,000억원에서 1조2,000억원 정도가 들어간다. 이처럼 막대한 개발비가 투자되기 때문에 말라리아나 결핵처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 개발에 제약사들이 적극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은 지난 2008년 기준으로 국민총소득(GNI) 대비 0.1%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0.3%에 크게 못 미치며 순위로 따지면 27개 회원국 중 25위다. 한국화학연구원 산하 의약화학연구센터의 장성연 박사는 "ODA 예산을 늘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소외질병 치료제 개발에 투입한다면 우리나라 신약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합성신약의 경우 값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어 인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는 것이 장 박사의 지적인 셈이다. 화학자들이 복잡한 화학식을 그려가며 대화를 많이 나누면 나눌수록 인류의 생명연장에 한걸음씩 더 다가서게 된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든 부자 나라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