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초대석] 김금수 노사정위원장
"노사정委 경제ㆍ사회포함 대타협 기구로"산업별ㆍ지역별 협의체 확대, 본격 가동 필요'일자리 창출 사회협약' 구체화 작업도 시급"노사문제 섣부른 타협보다 신중한 대화 중요"
[발자취] 이론·활동 겸비 노동운동 '대부'
"노사정委 경제ㆍ사회정책도 논의"
김금수 노사정위원장
김금수(67) 노사정위원장은 “노사문제는 섣부른 타결보다는 신중한 대화가 중요한 것”이라는 말로 앞으로 전개될 노동문제에서 노와 사 그리고 정부에 필요한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시각을 압축했다.
그는 “노사정위원회의 위원장이라는 자리는 말 그대로 노사정의 중재자일 뿐 말을 아껴야 하는데 이런 자리를 자주 가져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평소 무겁던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일단 말문이 터지자 평생을 노동현장과 연구에 바친 노동전문가답게 각 현안에 대한 입장을 조목조목 설명한 뒤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했다. 그는 “사실 노출된 위기는 이미 위기가 아닌 것”이라는 말로 노동계의 과도한 요구가 우리 사회와 경제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일각의 시각과 우려를 일축했다. 뒤집어보면 노사관계의 주요쟁점은 새롭게 탄생될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원만하게 타협점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지난해 3월25일 노사정위원장에 취임한 후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노사정위원회를 지키면서 노사정위원회라는 조직의 한계와 가능성을 그는 모두 읽고 있는 듯했다.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논의해야겠지만 노동전문가로서 노사정위 개편의 기본방향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간 논의돼온 것들이 있기 때문에 세 당사자가 결론을 끄집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 노사정위의 위상을 한번 ‘정립’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조직도 더 강화하고 그간 민노총의 불참으로 원활하지 못했던 산업(업종)별ㆍ지역별 협의체도 본격적ㆍ실제적으로 가동해야 합니다.
합의사항은 반드시 이행돼야 합니다. 정부측 인사가 오히려 더 많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사정위원회라는 명칭변경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름까지 바꿀 수 있다는 발언의 의미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지금 노사정위원회는 논의주제가 노동문제에 집중돼 있습니다. 의제를 경제와 사회정책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노사정이 동의하는 의제는 모두 다룰 수 있는 조직으로 갈 수도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네덜란드나 프랑스는 ‘경제사회위원회’, 남아공은 ‘전국경제발전노동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이와 유사한 조직을 갖고 있고 중국도 이런 식입니다. 조직이름에서 드러나듯 이들은 우리 노사정위와 달리 의제를 노동정책을 중심으로 하되 경제ㆍ사회에 관해 포괄적으로 다룹니다. 예컨대 우리 사회의 문제거리인 사교육비 문제도 깊게 들어가면 사실 근로조건과 연관돼 있습니다. 노사정위라는 이름 때문에 기능확대에 한계가 있다면 바꿔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각에서는 장관급인 노사정위원장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얘기도 하고 있습니다.
▲노사정위 본회의 정규멤버에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산자부 장관, 기획예산처 장관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간 참여주체의 격(格)이 문제가 돼 잘 돌아가지 않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노사정위원장이라는 자리는 중립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정무직이 바람직한 것 같습니다.
-개편되는 노사정위원회에 대통령이 정기적으로 참관해 정부멤버인 각료들을 독려하겠다고 하자 대통령이 참관한 합의내용이 번복될 경우 국정의 최후보루까지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노사정위원회 논의구조를 잘 몰라서 나온 오해입니다. 노사정위원회는 본회의 아래 상무위원회가 있고 상무위 아래에 소위원회 혹은 특별위 등을 두고 있습니다. 모든 논의는 이렇게 단계를 밟아 최종적으로 본회의에 올라옵니다. 대통령이 참관하겠다는 본회의까지 올라오는 안건은 사실 이 단계에서 노사정간 대화는 물론 치열한 논쟁과 협의를 거쳐 나온 최종 결과물들입니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그런 혼란은 없을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노사정위원회의 한계로 대통령 자문기구라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가변적인 조직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할 방안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일부 국가는 이 같은 조직을 헌법기구로 운영 중인 경우도 있고 우리도 행정기구로 개편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노사정위원회는 독립성 유지가 가장 중요하며 대통령 자문기구 성격을 유지한 채 독립성을 최대한 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서두에 노사정위와 관련, ‘위상정립’이 급선무라고 지적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정부도 이 부분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노사정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런 내용의 개편방안에 대한 의견이 모아지면 올해 안에 노사정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개정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사정위가 개편될 경우 당장 다뤄야 할 핵심 현안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선 노사관계에 관한 법과 제도를 선진화시켜야 합니다. 이 사안에 대해 이미 초안은 나와 있지만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야 합니다.
지난 2월 민주노총이 빠진 상황에서 한국노총과 타결한 ‘일자리만들기사회협약’을 보다 구체화하는 작업도 시급합니다. 이 협약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50여개 항목을 정해 노ㆍ사가 해야 할 일, 정부부처가 해야 할 일 등을 합의한 것인데 한국노총에 이어 민주노총까지 노동계 대표로 들어오면 이것을 본격적으로 확산시키고 실체화해야 합니다.
업종별(산업별) 노사정 소위나 분과위원회도 새롭게 확대ㆍ개편돼야 합니다. 그간 노사정위 내에 금융ㆍ공공ㆍ운수 부문 특별위원회가 있었지만 노동계 대표로 주로 한국노총 사업장만 들어와 있어 대화와 타협에 한계가 많았습니다.
지금 지역별 노사정 협의체는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의해 사실 노사정위원회와 별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번 개편과정에서 노사정위원회와 실질적인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도 해야 할 것입니다.
-기업인들은 ‘과격한 노사문화 때문에 못해먹겠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노사문화를 정립하는 데 필요한 사용자측의 핵심 덕목들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간 경험상 모두에게서 ‘벽’ 같은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불신을 벗고 상호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기업별 노조가 강해도 그동안 역할은 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사정위와 같은 이런 기구를 통해 얘기하는 게 좋고 정부도 이곳에서 한번 걸러놓는 게 좋고 사용자도 제도적인 틀 안에서 폭 넓게 얘기하는 게 좋습니다. 경험상 하는 얘기입니다.
기업인들은 투명경영을 통해 근로자와 노조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길게 보는 안목과 포용력을 갖춰야 합니다. 기업을 이끌고 산업을 이끄는 주체는 결국 기업인이고 노사관계의 주도세력도 사실 사용자입니다. 어렵다고 뒤에서 말만 말고 이곳 노사정위에 와서 대통령과 노조 앞에서 왜 기업하기가 힘든 건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호소하고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노동계의 대부로써 우리 노동운동의 바람직한 방향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권고하는 것이 3가지가 있는데 우선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의 권위부터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사람들이 정제된 생활을 갖지 못하면 정치적ㆍ사회적 영향력을 키울 수 없습니다. 내부규율을 세우라는 얘기입니다.
둘째는 조직개혁에 관한 부분입니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이나 모두 21세기 노동운동 방향을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기목표가 없는 운동은 노선이 없는 운동입니다. 셋째로 조합원의 자존심을 세워줘야 합니다. 우리 노동조합을 보면 조합원이 주인이 아니라 집행부만 움직입니다. 동료애도, 응집력도 많이 약화됐습니다.
10년 후 노조조직률(전체 노동자 가운데 노동조합에 가입한 비율)이 현재 12% 수준에서 20%까지 올라가느냐, 10명의 의원이 20명으로 늘어나느냐, 혹은 4명으로 줄어드느냐 여부는 지금 당장의 변화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김 위원장은 이어 하투를 앞둔 올 노사관계를 전망해달라는 주문에 “원래 예상됐고 가시화된 분쟁은 사실 겁낼 것 없는 것”이라고 낙관했다. 반면 “지난해 화물노조 문제처럼 가려져 있던 것들이 현실화될 때가 사실은 더 무서운 것”이라는 말로 노사문제의 복잡성을 간접 표현했다. 그는 “하지만 그런 쟁점들은 타결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회적인 큰 힘과 자산이 된다”며 “노와 사가 머리를 맞댄 후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거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이런 것을 하기로 했으니 정부는 이런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그런 모습들을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자주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정리=정승량기자 schung@sed.co.kr
대담:조희제 사회부장 hjcho@sed.co.kr
입력시간 : 2004-06-06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