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7년5개월만에 세자릿수시대…美·中 '통화전쟁' 불똥
| 심각한 외환딜러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7년여 만에 세자리로 하락한 25일 씨티은행 본점 외환영업부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는 한딜러의 표정이 심각하다.
/이호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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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원90전. 원ㆍ달러 환율이 종가 기준으로 세자리 시대를 열었다. 외환위기 직전인 지난 97년 11월14일 986원30전을 기록한 후 7년5개월 만이다.
세자릿수 환율은 우리에게 두번째 변곡점이다. 한국은행의 '통화 다변화'로 촉발된 'BOK(한은의 영문 약칭)쇼크'가 달러화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시발점이었다면 25일 세자릿수 시대의 개막은 국제외환시장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전환점이다.
서울경제는 3월2일부터 18일까지 외환 시리즈를 마친 데 이어 세자릿수 환율을 계기로 '제2부-꺼지는 달러 거품 세계경제 위협하나'를 시작해 저물어가는 달러화의 위상과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국의 통화전쟁, 그리고 그 속에서 잉태되고 있는 원화의 새로운 운명에 대해 집중 해부한다.
/편집자주
중국 위앤화와 달러화의 숙명적인 관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이에 대해 미묘하면서도 핵심을 짚은 분석을 내놓았다. FT는 “미 재무부가 위앤화 절상 공세를 강화하는 것은 사실상 백악관의 정치적인 결정이었다”며 “이는 백악관이 의회보호주의자들의 압력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의 위앤화 절상에 대한 미국의 집요한 공세, 이를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게임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표피적인 해석이다. 이는 세계의 리더가 되려는 중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 그리고 주변 국가들의 정치적 힘겨루기의 산물이다. 위앤화는 미국의 ‘대(對)중국 봉쇄(China blocking)’를 위한 경제적 도구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찌 보면 해묵은 논쟁거리 같은 위앤화 절상 문제가 이 시점에 불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환 전문가들은 ‘위앤화 논쟁’이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보고 있다. “환율 시스템 개혁을 가로막는 심각한 정치적ㆍ기술적 장애물은 없다”는 저우샤오찬 중국 인민은행(중앙은행) 행장의 발언은 꼭짓점에 이른 위앤화 환율개혁에 대한 상징적 언급이다.
1ㆍ4분기 9.5%에 이른 경제 성장률과 166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경제의 현실, 이에 반해 지난 한해 총 1조달러(재정적자 4,007억달러, 무역적자 6,171억달러)를 넘어선 미국 쌍둥이 적자의 불균형은 이제 한계를 넘어섰다. 여기에다 한국과 일본마저 미국을 ‘초라한 호랑이’ 신세로 전락시키고 있다. ‘BOK쇼크’가 달러화 몰락의 단초였다면 1ㆍ4분기 중국경제의 모습은 위앤화와 달러화의 거역할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물론 위앤화 절상이 지금 당장 진행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이 석유ㆍ식량ㆍ우주사업 등 3개 열쇠를 쥐고 있는 한 수십년간 지켜온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위치가 순식간에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재정경제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중국이 시스템을 바꿔보려는 노력은 하고 있지만 미국에 일방적으로 몰려 당장 절상을 수용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중국 당국자들의 발언을 ‘립서비스’ 차원으로 치부했다.
이광주 한은 국제국장도 “중국 위앤화 평가절상 임박설은 예년에도 5월 초 노동절 등 장기휴가를 앞두고 늘상 나왔다”며 시장이 지나친 반응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달러화와 위앤화의 힘겨루기를 새롭게 주목하는 것은 위앤화 절상 요구가 미국이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자 ‘선셋달러(sundollar)’라는 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런 측면에서 위앤화 절상은 미ㆍ중간의 대척점이 그려지는 1단계라고 해석했다. 그는 “미국과 아시아 지역의 거대한 무역 불균형을 감안하면 미국의 요구는 일면 정당하다”며 “(미국의 대중국 압박은) 기존 경제적 수단의 한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환율 조정을 지연시킬수록 위험은 더욱 커진다”며 일종의 폭탄 돌리기로 풀이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비슷한 해석을 내놓았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위앤화 절상 요구에 정치적 의미가 함축돼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은 조만간 보호무역주의의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며 위앤화 절상→금리 조정→통상압력 등 미국의 3단계 조치가 순차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국제적으로 드리워진 불균형 현상은 위앤화 절상 같은 환율 조정만으로는 시정하기 힘든 상황이고 종국에는 보호무역과 환율전쟁, 최악의 경우 통상전쟁이라는 그림자들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글로벌 달러화 약세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이는 달러화 약세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이냐는 수식적인 측면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70년대 이후 유지돼온 ‘제2의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를 암시한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학(NYU) 스턴스쿨 교수는 “현 시스템이 지속될 경우 달러 가치 하락이 심화하면서 미국 자산가치가 떨어지고 (세계경제가) 급격한 경기둔화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뭄뼈?정통한 한 외환당국자는 “중국발(發) 대공황 가능성을 무시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거대한 통화전쟁, 한국의 원화는 이 같은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 형국으로 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