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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팔순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지난 9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구형받던 순간이었다. 가까이 있던 몇몇이 눈물을 보았지만 모른 척 고개를 떨궜다.
조 회장은 그룹의 모태인 울산 공장이 지어진 지난 1966년부터 효성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50여년간의 노력과 성과가 징역 10년형으로 귀결되는 것에 대해 조 회장이 어떤 서글픔을 느꼈을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동안 효성의 잘잘못을 덮자는 것이 아니다. 특히 지금 이어지고 있는 집안 내부의 갈등을 보면 매를 맞아도 싸다. 조 회장과 장남 조현준 사장 등이 차남인 조현문 변호사와 대립각을 세우며 임직원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어떤 변명으로도 감출 수 없는 그룹의 치부다.
이번 재판의 쟁점이 됐듯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 효성물산의 부실을 처리하면서 법과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도 맞다.
하지만 모든 상황 논리들을 '법'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논리로만 귀결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무엇보다 조 회장이 10년형을 구형 받은 죄과는 여러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외환위기 당시는 멀쩡한 회사도 하루아침에 문을 닫던 시기였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효성은 비상시기에 금융당국의 요구대로 부채비율(200%)을 맞추느라 규칙을 어겼다. 잘한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도 맞다.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벌써 그룹은 해체됐을지 모른다. 오늘날 첨단 섬유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일군 효성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지금 앞뒤 맥락은 잘라버리고 20여년이 지난 현재의 법적 잣대로 이를 재단하고 있다. 경영상 잘못을 추궁당해야 하지만 지금 들이대고 있는 사법적 잣대는 너무 가혹하다. 조현준 사장이 구형 당시 부친 조 회장에 대해 "누구보다 공과 사가 분명한 분"이라고 말한 것은 설령 부자 간의 관계에서 나온 말일지라도, 그를 아는 재계 인사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2만5,000여 효성 식구들이 밝은 표정으로 희망을 말하는 조 회장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도록 사법당국의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길 기대한다.
/산업부=유주희기자 ginger@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