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산청 양민 사살’…사망 65년 만에 존재 인정받은 아기

대법, 1951년 국군에 사살된 2~3세 아기 '피해자로 봐야'…원심 파기환송

족보 등 기록없고 나이 진술 엇갈려 원심서는 피해자 인정안해

조 군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태어났다. 조 군의 가족은 1950년 전쟁 발발 전 경남 산청에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면서 이들은 ‘인민군이 점령한 적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국군이 다 죽인다더라’는 소문을 듣고 지리산으로 일가족이 피란을 갔다. 1950년 9~10월께였다. 1년여 뒤 국군은 산 위까지 민간인을 찾아 올라갔다. 아이 엄마 권 씨는 이제 갓 2~3살이 된 조 군을 안고 시아버지와 함께 산속을 달리다 국군에 붙잡혔다. 조 군의 할아버지는 몽둥이에 맞아 사망했다. 국군은 다른 가족의 행방을 말하지 않는 권 씨에게 총을 쏘았고 권 씨는 조 군을 품에 안은 채 숨졌다. 국군은 조 군에게도 총을 쐈다. 갓 2~3살이 된 조 군은 숨졌다.

조 군의 가족은 국군이 양민을 집단 사살한 이른바 ‘경남 산청·함양사건’의 피해자다.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조사로 당시 조 군을 포함한 민간인들의 피해사실이 규명됐다. 그러나 2~3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조 군은 그동안 손해배상 소송 과정에서 법적으로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기록이 없어서다. 그러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조 군은 사망 65년 만에 실존 사실을 확인받았다.


대법원2부(김창석 대법관)는 산청 민간인 사살 사건의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조 군을 피해자로 판단하지 않은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조 군을 피해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조사보고서에서는 사망 나이가 1세였다가, 생존자의 진술조서에는 사망 당시 나이가 3세로 되어 있고, 또 다른 당시 이웃의 진술서에는 나이가 2세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족보와 제적등본에도 조 군에 대한 기록이 없어 조 군을 피해자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항소심 재판부는 말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관계자 진술이 일치한 점에 더 주목했다. 당시 조 군의 삼촌은 “다른 방향으로 도망을 갔던 조부와 작은 숙모, 그 품에 안겨 있던 사촌동생 조 군은 국군에게 총살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과거사정리위원이 조 군의 이웃을 조사한 보고서에도 “피란 중이던 조 씨와 아이엄마, 그 품에 안겨있던 아이 조 군 등 4명이 구타사망, 사살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그 당시 조 군은 참 잘생겼었다”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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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조 군이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이전에 출생해 1951년 11월 이 사건으로 사망했다면 사망 당시 만 1세를 넘긴지 오래된 무렵이어서 제3자에게는 우리나라 나이로 2세나 3세로 보였을 것이므로 관련자들에 따라 당시 조 군의 사망 나이를 2세나 3세로 달리 진술한다더라고 그것만으로는 조 군의 희생 사실이 거짓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조군의 출생신고나 사망신고 자료가 없고 족보에도 기록이 없으나 이는 조 군이 출생한 후 얼마지나지 않아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던 중 만2세가 되기도 전인 어린 나이에 비극적인 이 사건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등재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조 군의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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