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이런 멍게 같은!

[식담객 신씨의 밥상] 다섯번째 이야기-멍게



최근 일본과 에콰도르에서 지진 소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불의 고리’라고도 불리는 환태평양조산대(環太平洋造山帶)는 말 그대로 둥그렇게 태평양을 둘러싼 조산대를 말합니다.

여기서 조산대(造: 만들 조, 山: 메 산, 帶: 띠 대)란 산을 만드는 지역, 즉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화산활동지역을 의미합니다.

멕시코, 칠레, 호주를 비롯해, 인도네시아와 대만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도 대표적인 지진 발생 지역입니다.

불현듯 2011년 3월 일본동부대지진 사태가 떠오릅니다.

심각하고 안타까운 사고에 전세계의 온정이 이어졌지만, 재정적으로 풍족하고 신세지기 싫어하는 일본은 거절하는 데 애를 먹었다죠.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엔 불안과 공포가 치솟았습니다. 바로 방사능 때문이었습니다.

사상 최악의 방사능 유출사고라던 체르노빌보다 심각하다는 뉴스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대책 없이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대양의 정화력을 과신하는 건지, 아무 대책 없는 상황인 건지...

걱정은 걱정이고 먹을 건 먹어야 했습니다.

봄은 멍게철입니다. 특히 5월 이후 멍게는 글리코겐이 풍부해져 맛이 최고라는데, 개인적으로 아직 바람이 쌀쌀한 3~4월 멍게를 더 좋아합니다.

시원한 찬바람이 멍게에 닿는 듯해 괜스레 더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멍게는 수출용과 내수용에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식당에서 먹는 멍게는 일본으로 수출하는 멍게와 많이 다릅니다. 일단 알의 굵기부터 다릅니다. 수출용 멍게는 씨알이 굵습니다. 맛은 한결 더 깊고 담백하며, 식감(씹는 느낌)도 부드럽게 쫀득합니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꼬맹이 멍게처럼 자잘하게 짭짤하지 않습니다. 양식장을 운영하는 지인께서 보내주셔서, 2011년 서른일곱 나이에 수출용 멍게를 처음 먹었습니다. 그 때의 감동을 기억합니다.

청담동 삼성원조곱창에서 곱창의 진짜 곱맛을 느꼈을 때보다 더 큰 환희였습니다. 멍게 한 조각이 엄지손가락보다 큽니다.

향이 강한 초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김치를 곁들여 먹었습니다. 칼칼한 김치맛이 멍게의 비린 맛을 잡아줍니다. 아삭한 식감은 쫀득한 멍게와 절친한 마리아주를 이루고, 씹는 소리는 운치를 돋웁니다. 죄송합니다, 잠시 신의 물방울 놀이에 허우적댔습니다. ( -_-);;

그 때의 맛폭풍에, 스포츠 동호회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멍게를 다시 한 번 올렸습니다.

10여 명 사내들이 처음 맛보는 멍게에 대한 칭찬을 이어갑니다. 사람 입맛은 크게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하지만 아직 후쿠시마 방사능에 대한 우려로,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특히 2세를 기다리는 결혼 적령기 후배들의 표정이 조심스럽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한 마디 합니다.

“그거 통영산입니다. 안심하고 들어요. ”

“네, 맛있습니다. 일본 방사능 때문에 본의 아니게 죄송합니다. 귀한 거 올려 주셨는데요.”

“괜찮아요. 난 지금 정부 대응이 맘에 안 들어요. 대다수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데, 왜 인력과 비용을 들여 일본산 농수산물을 검역해서 수입하는지.”

“불안하긴 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구제역 발생하면, 가장 먼저 돼지고기 수입 중단해요. 가끔 등심이나 뒷다리살 맛있다며 우리 돼지 먹기 캠페인 벌이는 게, 일본으로 못 보낸 고기 때문에 그러는 거에요.”

속상한 이야기에 술이 한 순배씩 돌고, 향긋하고 쫀득한 멍게를 느낍니다.

“그렇게만 볼 건 아니지.”

꾸짖는 듯 냉소적인 목소리에 가슴이 막히는 듯합니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회원이 말을 던집니다. 커다란 체격에 맞게 목소리도 걸걸합니다.

“정부에는 똑똑한 전문가들이 없을 것 같아요? 거기 회원님이 수산물이나 방사능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다른 회원들 표정에 당혹감이 비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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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어요? 국가가 하는 일에 우선 적극적으로 따라야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삐딱하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잃어버린 10년도 온 거 아냐?”

순간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 양반 술이 과하셨나? 아니면 내가 순둥이로 보이나? 혹시 지난 정권 때 손해 많이 봤나? 가만히 있으면 바보로 보이려나?

“거기 형님, 속상한 거 많으셨나 봅니다. 마음 좀 가라앉히시죠?”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웃음 섞인 어조로 입을 뗐습니다. 평범한 체구에 유순해 보이는 표정입니다.

“저도 불안합니다. 딸이 어린이집 다녀요. 그런 식재료 들어오면 먼저 어디로 갑니까? 고관대작이나 재벌집 밥상에 올라가지는 않겠죠?”

“그거야 국민이 선택하면 되지?”

중년 회원이 가당찮다는 듯 청년의 말을 받아칩니다.

“선택할 수 있다구요? 일본 거 안 들여오면 불안도 걱정도 없는데, 왜 그렇게까지 해줘야 합니까?”

이야기가 하나 하나가 똑 부러집니다. 회원들이 술렁입니다.

“음식을 선택할 수 없는 학교와 군부대 급식은 어떡합니까? 군대에서 혹서기 백숙 시리즈 겪어보셨잖습니까?”

그랬다.

군 복무 시절, 양계장 인근에 있던 우리 부대도 한여름 폭염이 몰려올 무렵이면 몇날며칠 동안 백숙이 나오곤 했습니다.

중년회원이 어느새 홍익인간이 되었습니다. 얼굴빛이 늦가을 저녁 노을처럼 새빨갛습니다.

“당신 몇살이야? 어디서 사람을 가르치려고 그래? 넌 삼촌도 없어?”

“작은 아버지 두 분 계십니다. 그쪽 아저씨보다 열 살 이상 많으신 것 같은데, 어린 사람들에게도 예의를 지키시는 분들입니다.”

“이런 거지 같은 경우를 봤나!”

중년회원이 자리를 박차고 나갑니다. 남은 자리엔 정적이 흐릅니다.

뻘쭘함을 핑계로소주를 한 잔씩 들이키고, 멍게를 입으로 가져갑니다.



아무튼 참 애매한 상황에, 우리는 수출용 고급 우멍거지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아, 맞다!”

아까 그 용감한 청년이 시선을 모읍니다.

“그 아저씨 회비 안 내고 튀었어요!”

제법 많이 먹어서 회비가 꽤 될 텐데....

이런 멍게 같은! 우멍 거지 같은! /식담객 analogoldman@naver.com



식담객 신씨는?

학창시절 개그맨과 작가를 준비하다가 우연치 않게 언론 홍보에 입문, 발칙한 상상과 대담한 도전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어원 풀이와 스토리텔링을 통한 기업 알리기에 능통한 15년차 기업홍보 전문가. 한겨레신문에서 직장인 컬럼을 연재했고, 한국경제 ‘金과장 李대리’의 기획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PR 전문 매거진 ‘The PR’에서 홍보카툰 ‘ 미스터 홍키호테’의 스토리를 집필 중이며, PR 관련 강연과 기고도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홍보 바닥에서 매운 맛을 본 이들의 이야기 ‘홍보의 辛(초록물고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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