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아시아 증시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충격을 딛고 다시 안정세를 보인 가운데 월가에서는 아시아 주식 저가 매수의 기회라는 전망이 속출하고 있다. ‘죄 없는 구경꾼’에 불과한 아시아 증시가 단기 타격은 입겠지만 영국 등 유럽연합(EU)과 정치·경제적으로 연관성이 낮아 중장기적으로 반등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반면 유럽·미국·일본 증시는 브렉시트 후폭풍에 직접 노출되며 추가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EU 회원국의 도미노 탈퇴 움직임과 스코틀랜드 독립 추진, 달러화 부족에 따른 신용경색 조짐, 위험자산 회피 심리 증폭, 지지부진한 EU와 영국의 브렉시트 협상 등의 여파로 위기가 아시아로 전염될 가능성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이번주 진행되는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전방위 위기 진화 작업과 공조 노력을 지켜보며 금융시장이 안정이냐, 추가 혼란이냐의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상당수 월가 투자가들은 브렉시트로 아시아 증시도 변동성이 커지겠지만 결국 EU 지역 내로 영향이 제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나온 지난 24일 일본을 제외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아시아 지수는 3.4% 급락했지만 전 세계 MSCI 지수(-4.9%)와 유럽 MSCI 지수(-8.8%)에 비하면 하락폭이 작았다.
JP모건체이스의 사사키 도루 일본증시연구소 수석은 “브렉시트는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에 경제·정치적으로 대형 충격을 몰고 오겠지만 유럽에 한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레디트스위스도 “정치적 충격에 시장이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신흥국 주식 투자 확대 의견을 유지했다. 또 유럽 경제의 혼란이 심화할수록 투자가들이 아시아로 눈을 돌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브렉시트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일정이 늦어지고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양적완화가 기대된다는 것이 아시아 증시에 호재로 꼽히고 있다.
반면 미국·유럽 증시는 그동안 많이 오른 만큼 브렉시트를 계기로 큰 폭의 추가 조정이 예상됐다. 지난 5년간 아시아 증시가 중국 경제 둔화 우려에 5.3% 하락한 반면 유럽과 미국은 각각 22%, 61%나 올랐다. JP모건의 니콜라스 파니기르조글로우 전략가는 “미국 증시가 최악의 경우 2010~2012년 (유로존 재정위기) 수준으로 10%가량 급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브렉시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면 투자가들이 지역을 막론하고 위험자산인 주식을 내던질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HSBC의 프레데릭 뉴만 아시아리서치 공동대표는 “엔화 강세로 아시아 신흥국으로 들어오는 자금이 마르기 시작할 위험이 있다”며 “달러 상승세가 지속되면 중국 위안화 절하를 시작으로 아시아에서 연쇄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시장 혼란 우려가 큰데도 정작 위기 제공자인 영국은 브렉시트 절차를 미적거리고 있고 정치권 내분에 지도력마저 실종된 상태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이 “브렉시트 결정 후 실제 탈퇴까지의 불확실한 시간이 경제의 최대 악재”라고 울분을 토할 정도다.
각국 중앙은행들의 독자적인 시장안정책의 약발이 먹힐지도 관심사다. 일본의 경우 이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시장 유동성 확보와 원활한 자금공급을 일본은행(BOJ)에 요청하는 등 엔화 강세와 증시 급락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시장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영국과 EU가 가장 효율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안을 신속하게 내놓아야 한다”며 “그들이 앞으로 며칠 사이에 내놓은 결과들이 리스크의 방향성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시장 동요는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면서도 “각국 중앙은행은 많은 유동성을 시장에 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